날아든 청구서
선양그룹과의 계약이 공식적으로 체결되자, 김대리는 (주)정도기획의 살아있는 신화가 되었다.
그의 자리는 햇빛으로 빛나는 창가의 ‘에이스석’으로 옮겨졌고, 사내 메신저에는 그의 노하우를 묻는 다른 팀 사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박팀장은 이제 그에게 시시콜콜한 보고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아무도 성공시키지 못한 최고 난이도의 프로젝트들만 묵묵히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네가 알아서 해봐’라는 무언의 신뢰이자, 왕관의 무게였다.
가장 큰 변화는 그의 ‘인맥 네트워크’에서 일어났다. 이전까지 그가 사냥꾼처럼 인맥을 ‘수집’했다면, 이제는 인맥들이 하이에나처럼 그에게 몰려들었다.
#인맥관리 #관계의역학
성공은 새로운 관계를 끌어당기는 가장 강력한 자석이다. 하지만 원치 않는 관계는 때로 일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소음이 되기도 한다. 김대리는 이제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가 아닌, ‘어떻게 관계를 쳐낼까’를 고민해야 했다. 그는 자신만의 원칙을 세웠다.
단순한 ‘밥터디’는 거절한다: 목적 없는 만남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나의 노하우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자를 경계한다: 기브앤테이크가 없는 관계는 착취다.
나의 성공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소수에게 집중한다: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화려한 인맥이 아닌, 진실한 관계다.
그는 조미란 사장이나, 이제는 그를 진심으로 인정해 주는 박팀장 같은 소수의 관계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그의 첫 번째 노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그의 스마트폰이 조용히 울렸다. 발신자는 ‘오한나’였다.
[오한나] 민석아, 소식 들었어. 선양그룹 건, 정말 대단하다. 진심으로 축하해! 우리 저번에 보기로 한 밥, 이번엔 내가 살게. 시간 괜찮을 때 알려줘.
김대리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가 먼저 연락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바로 그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이다. 그의 성공을, 그의 세상에서 먼저 알아봐 준 것이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모든 것을 이룬 기분이었다.
두 번째 만남의 분위기는 첫 만남과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더 이상 사는 세계가 다른, 어색한 동창이 아니었다.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서로를 마주한 ‘플레이어’였다. 김대리는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일과 성공에 대해 자신감 있게 이야기했다.
“정말 대단하다, 민석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그냥... 그 회사의 입장에서, 내가 그 회사 직원이라면 어떤 제안을 받고 싶을까, 그것만 생각했어.”
그는 이수진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평생 안고 가야 할 빚이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에 담긴 진심과 자신감은 오한나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녀는 존경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자리에는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설렘의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녀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대리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그의 노력은 마침내 그가 원했던 가장 큰 보상, 즉 오한나의 인정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이 짧게 울렸다.
새로운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발신인은 처음 보는 프로필 사진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주)정도기획의 김민석 씨 맞으신가요?]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다름이 아니라, 이수진 씨 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순간, 세상이 멈췄다. 행복감으로 가득 찼던 그의 심장이 얼음물에 처박힌 듯 차갑게 식어 내렸다.
이수진. 그가 애써 묻어두려 했던 이름.
그의 화려한 성공 신화, 그 가장 밑바닥에 감춰두었던 위태로운 첫 번째 벽돌.
성공에 대한 청구서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날아든 것이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