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콜렉터 김대리 17화

사죄의 기술

by 공감디렉터J

다음 날 오전 9시 50분, 선양그룹 본사.

김대리와 박팀장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회의실로 안내되었다.

지난번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화려한 대회의실이 아니었다. 창문도 없는 작고 차가운 분위기의 밀실.

테이블 저편에는 구매팀 최동환 차장과 법무팀 윤태수 변호사, 그리고 처음 보는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성, 선양그룹 감사팀장이 앉아 있었다. 공기는 재판정처럼 서늘했다.

감사팀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정도기획 박팀장님, 김대리님. 바쁘신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저희는 이번 계약 과정에서 김대리님과 저희 법무팀 이수진 변호사 간의 부적절한 사전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 해명해주시죠.”


모든 시선이 김대리에게 쏠렸다. 박팀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미동도 없었다. 모든 것은 김대리에게 달려 있었다.

김대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먼저, 저의 미숙한 행동으로 인해 이수진 변호사님께 큰 누를 끼치고, 선양그룹에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협상 #사죄의기술 #위기대응


1단계: 상대방의 피해를 먼저 인정하고 사과하라.

‘내가 잘못했다’는 자기중심적 사과가 아니라, ‘당신에게 피해를 줘서 미안하다’는 상대방 중심의 사과가 상황을 푸는 첫 열쇠다. 이는 상대방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대화의 문을 여는 효과가 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준비해 온 사실을 담담하게 밝혔다. 과거 이수진 변호사와의 관계, 실적에 대한 압박감 속에서 부적절한 연락을 취하게 된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그녀가 겪고 있을 곤란한 상황에 대한 미안함까지. 변명이나 자기 연민은 없었다. 오직 사실과 그에 대한 반성뿐이었다.

윤태수 변호사의 굳었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


“그렇다면, 이수진 변호사에게서 얻은 정보가 이번 계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사팀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랭했다.


이때, 침묵을 지키던 박팀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질문에는 제가 답변하겠습니다.”


박팀장은 감사팀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김대리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과오입니다. 저희 회사 규정에 따라 이 일에 대해서는 엄중히 조치할 것입니다. 회사의 책임자로서 먼저 사과드립니다.”


박팀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회의실의 모두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저는 이 계약을 최종 승인한 책임자로서 말씀드립니다. 이 계약의 핵심 가치는 담당자 이름 하나가 아닙니다. 그 정보를 실마리 삼아, 김대리가 밤을 새워 만들어 낸 이 제안서의 통찰력과 데이터에 있습니다.”


그는 미리 준비해 온 서류—선양그룹 PT자료와 김대리가 조사했던 바인더들의 요약본—를 테이블 위로 밀었다.

“만약 이 시작점이 문제가 된다면, 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저의 책임을 물으셔도 좋습니다. 계약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십시오. 하지만 저희는, 저희가 제안한 이 솔루션의 가치를 자신합니다.”


2단계: 책임의 선을 명확히 하라.

개인의 실수는 인정하되, 그 결과물(프로젝트, 계약)의 가치는 분리하여 평가받아야 한다. 리더는 직원의 실수를 감싸는 대신, 그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오히려 계약과 조직의 신뢰도를 지켜낼 수 있다.


회의실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김대리는 박팀장의 단단한 옆모습을 보며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구매팀 최동환 차장이 서류를 검토한 후,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김대리님의 진솔한 설명과 박팀장님의 책임감 있는 자세, 잘 들었습니다. 저희가 우려했던 것은 의도적인 정보 유출이나 스파이 행위였습니다. 하지만 방금 두 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이번 일은 한 직원의 과욕이 부른 해프닝으로 판단됩니다.”


감사팀장을 향해 그가 말했다.


“이수진 변호사에 대한 감사는 재고해주시되, 김대리에게는 공식적인 ‘경고’ 조치를 하는 것으로 정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감사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겁니다. 회사 대 회사의 계약은 신뢰가 기본입니다.”


가장 큰 위기가, 앞장서서 정면으로 부딪히는 방법을 통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회의실을 나온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무 말도 없었다.

빌딩 로비를 빠져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고 나서야, 박팀장이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김대리.”

“네, 팀장님.”

“빚졌어, 넌.”


그는 김대리를 돌아보지 않은 채, 앞만 보며 말했다.


“이수진 변호사한테도 빚졌고, 오늘 나한테도 빚졌고, 회사에도 빚졌다. 그 빚, 앞으로 네 실력으로 갚아나가. 알았나?”


용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에 걸친 채무에 대한 통보이자, 다시 한번 주어진 기회였다. 김대리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네, 팀장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윤태수 변호사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소중한 시간 할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수진 변호사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전해주십시오.]


빚을 갚는 길은 멀고 험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인맥 콜렉터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빚 갚는 김대리’의 시대가 시작될 터였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