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수사대-시즌 4: 악마의 연대기

EP.1 데자뷔 (Deja Vu)

by 공감디렉터J


2027년 3월 15일, 서울 강남구.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도시의 불빛은 빗줄기에 번져 흐릿한 수채화처럼 보였고, 사이렌의 섬광만이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명멸했다.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42층, 그 꼭대기에서 도시의 그림자가 또 하나의 비극을 삼키고 있었다.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강태우의 얼굴은 빗물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액체로 축축했다.


강태우. 47세. 미스터리 수사대의 리더이자 프로파일러.

경찰청에서 20년간 프로파일러로 활약했으나, 2016년 잘못된 프로파일링으로 무고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한 사건 이후 자신의 직관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후, 경찰을 떠나 민간 수사관이 되었지만, 여전히 범인의 심리를 읽는 그의 능력은 예리했다.


그는 폴리스 라인을 넘어 작업실로 들어서는 순간, 숨을 멈췄다.

바닥에는 유명 웹툰 작가 공민혁이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강태우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시신 자체가 아니었다. 시신을 둘러싼 공간, 그 전체를 지배하는 기괴하고 잔혹한 연출. 마치 실패한 조각상을 망치로 부수어 재조립한 듯한 형태였다.

피해자의 사지는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꺾여 있었고, 몸통은 마치 조각품처럼 특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석고 가루가 뿌려져 있어, 마치 대리석 조각상처럼 보였다.

강태우는 저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뇌리의 가장 깊은 곳, 2016년의 악몽을 봉인해두었던 상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듯했다.


"...조각가."

나직하게 흘러나온 그의 목소리가 방안의 정적을 깼다.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팀장님?"

뒤따라 들어온 박유진이 되물었다.


박유진. 40세. 도시전설 연구가이자 미제사건 추적자.

20여 년전, 여동생이 실종되었다. 경찰은 가출로 처리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동생을 찾기 위해 시작한 추적이 17년의 경력을 만들었다. 그녀는 모든 괴담 뒤에는 진실이 숨어 있다고 믿었다. 발품을 마다하지 않는 현장주의자인 그녀는 잊혀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되살려냈다.


강태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오직 11년 전, 자신이 놓쳐버린 연쇄살인마의 시그니처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의 실패로 무고한 한 사람, 윤재혁의 인생이 박살 났고, 그는 스스로를 괴물이라 여기며 경찰 배지를 반납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괴물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모방범일 가능성은요?"

라텍스 장갑을 끼며 시신에 다가선 한서진이 차갑게 물었다.


과거 억울하게 살해당한 언니의 진범을 찾기 위해 법의학자가 된 38세의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의 한서진 교수. 차가운 부검대 위에서 진실을 읽어내는 그녀의 손은 수천 구의 시신을 해부했지만, 여전히 떨리지 않았다. 아니, 떨려서는 안됐다. 그녀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증거'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녀는 시신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며 말을 이었다.

"시그니처는 완벽하게 일치하지만,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요. 마치 교과서를 베껴 쓴 학생처럼. 진범이라면 세월이 흐르면서 수법이 진화하거나 변형되어야 정상인데, 이건... 11년 전 그대로예요."


"피해자의 고통을 즐기려는 의도보다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메시지에 가깝다는 건가요."

오민재가 강태우의 굳은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민재. 36세. 범죄심리학자이자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

수년 전, 온라인 성희롱 피해로 고통받던 여동생 민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는 동생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터넷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 후회가 그를 평생 괴롭혔다. 이제 그는 누구보다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의 눈에는 이 기괴한 현장보다,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강태우의 고통이 더 아프게 보였다.

"디지털 흔적은 깨끗해요. CCTV는 정확히 범행 시간 전후로 3시간 동안 작동이 멈췄고, 작가의 컴퓨터는 완벽하게 초기화됐어요. 클라우드 백업도 모두 삭제됐고요. 보통 실력자가 아니에요."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이지수가 짧게 보고했다.


이지수. 30세. 화이트해커이자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고등학생 시절 친구의 배신으로 퇴학당한 후, 사람보다 코드를 더 신뢰하게 되었다. 7년에는 사이버 스토킹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 경험이 그녀를 디지털 범죄 피해자들의 편에 서게 만들었다. 그녀에게선 어떤 디지털 흔적도 숨을 수 없었다.


강태우에게는 모방범이든, 진범의 귀환이든 상관없었다.

이것은 자신에게 보내는 명백한 조롱이자 도전장이었다.

"내가 놓친 놈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갈라졌다.

"이번엔... 이번엔 반드시 제 손으로 끝냅니다."

그 목소리는 강철처럼 단단했지만, 동시에 11년 묵은 죄책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오후 11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실

한서진은 현미경 렌즈에 눈을 붙인 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샘플들을 스캔했다.

피해자의 옷에서 채취한 섬유, 손톱 밑의 이물질, 머리카락에 묻은 먼지 입자들.

그러던 중, 그녀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수십억 개의 먼지 입자들 사이로, 유독 이질적으로 빛나는 미세한 청록색 입자. 자연계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희귀 광물이었다. 그녀는 즉시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시작했다.

한서진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화면에 떠오른 사건 번호. 그녀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녀를 법의학자로 만든 바로 그 번호였다.


[사건번호 2011-XXXXX. 서초동 여대생 피살사건]

[피해자: 한서영(당시 29세)]

[특이사항: 희귀 광물 입자 검출 - 청록색 크리소콜라(Chrysocolla)]


오래 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그녀의 언니. 범인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그리고 언니의 유품에서 발견되었던, 누구도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던 바로 그 희귀 광물 입자가 지금, 16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눈앞의 모니터에서 똑같은 스펙트럼을 내뿜고 있었다.

"마...말도 안 돼."

그녀의 입에서 처음으로 논리가 아닌 부정의 언어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16년 전 언니 사건의 증거물 사진을 불러왔다. 언니의 옷에서 채취한 청록색 입자와 오늘 공민혁의 옷에서 채취한 입자. 두 샘플을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불순물 패턴, 결정 구조, 광학적 특성. 모든 것이 일치했다.

"16년 전과... 똑같아."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법의학자로서 그녀는 우연을 믿지 않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새벽 2시, 미스터리 수사대 사무실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조각가'의 파일을 검토하던 강태우의 전화가 울렸다. 한서진이었다. 평소의 차분함은 온데간데없는,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강 팀장님. 지금 당장... 제 연구실로 와주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전화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직접 보셔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포와 혼란이 섞여 있었다.


새벽 3시,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연구실에 도착한 강태우는 할 말을 잃었다. 한서진의 모니터에는 두 개의 사건 파일이 나란히 떠 있었다.


2016년 '조각가' 연쇄살인 사건

2011년 서초동 여대생 한서영 피살사건


그리고 두 사건을 연결하는 단 하나의 증거. 청록색으로 빛나는 희귀 광물 입자의 분석 데이터가 그들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 광물은 크리소콜라라는 구리 규산염 광물이에요. 한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주로 칠레나 페루에서 채굴되죠. 그런데..."

한서진이 화면을 확대했다.

"불순물 패턴을 보세요. 이 광물은 특정 광산에서만 나오는 독특한 불순물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마치 지문처럼 고유한 거죠."

"그러니까..."

강태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11년 전 제가 수사했던 '조각가' 사건과, 16년 전 한 교수님의 언니 사건이..."

"같은 범인이에요."

한서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사건도 마찬가지고요. 이 광물 입자는 세 사건 모두에서 발견됐어요. 우연이 아니에요. 이건... 이건 범인의 시그니처예요."

강태우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11년 전, 그가 놓친 '조각가'는 사실 더 오래전부터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서진의 언니도 그의 피해자였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 잔혹한 접점. 서로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비극이 하나의 증거 아래 기묘하게 연결되는 순간, 두 사람은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데자뷔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쫓고 있던 것은 과거의 망령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지켜보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거대한 악의 그림자라는 것을.

"한 교수님."

강태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범인은 우리 각자의 과거를 알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거예요."

"무슨 메시지를요?"

"'나는 아직 여기 있다. 그리고 너희가 나를 잡을 수 없다는 걸 증명하겠다.'"


다음 날 아침, 미스터리 수사대 사무실

팀원 전원이 모였다. 강태우는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이 범인은 최소 16년 이상 활동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았죠. 이건 단순한 연쇄살인마가 아니에요. 매우 지능적이고, 계획적이며, 무엇보다..."

강태우가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를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박유진이 손을 들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요? 16년 동안 숨어 있다가 왜 지금 다시 나타난 거죠?"

"그게 제일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민재가 끼어들었다.

"범인의 심리를 생각해보면, 이건 도전장이에요. 우리 팀이 지난 3년간 수많은 미제사건을 해결했잖아요. 범인은 그걸 지켜봤을 거예요. 그리고 생각했겠죠. '과연 이 팀이 나를 잡을 수 있을까?'"

"그럼 이건 게임이라는 건가요?"

이지수가 물었다.

"네. 범인에게는 게임이에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강태우가 한서진을 바라보았다.

"정의를 되찾을 기회입니다."

범죄심리학자 오민재가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하며 말했다.

"16년 동안 활동한 연쇄살인마. 그의 동기, 패턴, 심리 상태를 분석하면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 거예요."

강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신속하게 디지털 흔적을 찾고, 피해자들의 연결고리를 확인해 봅시다. 그리고..."

그는 팀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조심하세요. 이 범인은 우리를 알고 있습니다. 이번엔 우리가 표적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날 밤, 강태우의 아파트.

강태우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11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2016년, '조각가' 사건. 그는 당시 최고의 프로파일러로 불렸다. 하지만 그 사건에서 그는 실수를 범했다.

윤재혁을 범인으로 지목했고, 무고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했다. 그리고 진짜 범인은 놓쳤다.

강태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서재로 갔다. 먼지 쌓인 박스를 꺼내 열었다. 11년 전 사건 파일들이 가득했다.

그는 피해자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펼쳤다.


첫 번째 피해자, 이수진, 32세, 피아니스트.

두 번째 피해자, 박민호, 35세, 바이올리니스트.

세 번째 피해자, 최영희, 29세, 첼리스트.

네 번째 피해자, 김태형, 38세, 오케스트라 단원.


그는 파일을 뒤적이다가 자신이 직접 썼던 한 장의 메모를 발견했다.

"피해자들의 공통점: 모두 클래식 음악 관련 직업. 범행 현장에서 클래식 음악이 재생되고 있었음. 베르디의 '레퀴엠' - Dies Irae (진노의 날)"

강태우는 메모를 다시 읽었다. 클래식 음악. 레퀴엠. 진노의 날.

"음악..."

그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

그는 서둘러 노트북을 켜고 2011년 한서진 교수의 언니 사건 파일을 검색해 내려갔다.

"피해자 한서영(29세)은 피아노 강사로 일하고 있었으며..."

강태우의 눈이 커졌다. 한서영도 음악과 관련된 사람이었다.

그는 서둘러 오늘 피해자인 공민혁의 정보를 검색했다. 웹툰 작가. 하지만...

"공민혁 작가는 어릴 적 피아노 영재로 불렸으나, 손목 부상으로 음악을 포기하고 웹툰 작가가 되었다."

모든 피해자가 음악과 연결되어 있었다.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실은 아직 지나간 것도 아니다.
(The past is never dead. In fact, it’s not even past.)."
- 윌리엄 포크너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