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수사대-시즌 4: 악마의 연대기

EP.2 부서진 조각상

by 공감디렉터J


2027년 3월 16일.

미스터리 수사대 사무실의 공기는 축축한 지하실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밤새 누구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 그림자진 얼굴들은 하나같이 지쳐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강태우였다.

"윤재혁."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인 것처럼 거칠었다.

"제가... 용의자로 지목했던 사람입니다."


2016년, 강태우는 당시 28세였던 무명 조각가 윤재혁을 '조각가' 연쇄살인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결정적 증거는 없었지만, 강태우는 자신의 프로파일링을 확신했다. 윤재혁은 음악을 전공했고, 조각을 했으며, 피해자들과 같은 클래식 동호회에 가입되어 있었다.

언론에 신상이 공개되면서 윤재혁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다. 그리고 6개월 뒤, 진범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나면서 그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어 있었다.

"그 사람부터 다시 찾아야 합니다."

강태우의 목소리는 떨렸다.

"모든 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요."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다. 그것은 수사관의 집념이라기보다, 속죄를 갈망하는 죄인의 절박함에 가까웠다.


재빠르게 디지털 흔적을 찾고 있던 이지수가 외쳤다.

"윤재혁... 찾았어요."

그녀가 모니터를 팀원들 쪽으로 돌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4년 전인 2023년 12월, 경기도 화성시 공사장에서 추락사고로 사망했어요. 공식 사인은 실족사."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강태우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파괴한 한 남자의 인생이, 결국 죽음으로 끝났다는 사실. 그 무게가 가슴을 짓눌렀다.

"사고 현장 보고서 있어요?"

한서진이 물었다.

"네, 있어요."

이지수가 파일을 열었다.

"새벽 4시경, 공사장 3층에서 추락. 목격자 없음. CCTV는... 고장 나 있었대요."

"CCTV가 고장?"

오민재가 날카롭게 물었다.

"어제 사건도 CCTV가 교체됐고, 4년 전 윤재혁 씨 사건도 CCTV가 고장... 우연치고는 너무 많은 공통점이네요."

"의문사로 재조사 요청은 없었나요?"

박유진이 물었다.

"없었어요. 유족도 없고... 아, 어머니가 계시긴 한데 치매가 심하셔서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되어 있네요."

"그 어머니를 찾아뵙시다."

강태우가 일어섰다.


경기도 화성시 요양원.

윤재혁의 어머니 김순자는 요양원 정원의 벤치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머님."

강태우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는... 경찰이었던 강태우라고 합니다."

노인은 반응이 없었다. 강태우는 무릎을 꿇고 노인의 눈높이에 맞췄다.

"11년 전, 제가... 제가 어머님의 아들을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그것은 제 실수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눈가가 붉어졌다.

노인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님, 재혁 씨의 유품을 볼 수 있을까요? 저희가... 진짜 범인을 찾고 싶습니다."

요양원 직원의 안내로, 그들은 윤재혁의 유품이 보관된 창고로 향했다.

먼지 쌓인 낡은 박스 하나. 한 남자의 인생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팀원들은 말없이 유품을 살폈다. 낡은 조각칼, 빛바랜 미술 서적, 그리고 손때 묻은 잡동사니들.

무고한 한 남자의 부서진 꿈의 파편들이었다.

강태우는 조각칼을 집어 들었다. 손잡이에는 윤재혁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칼을 꼭 쥐고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상자 구석에서 낡은 MP3 플레이어를 꺼내 들던 박유진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유진 씨? 왜 그래요?"

오민재가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떨리는 손으로 MP3 플레이어를 감싸 쥐었다.

은색 몸체가 긁히고 닳아빠진, 2000년대 초반 모델.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윤재혁의 유품이 보이지 않았다.

2006년, 비 오는 날 집을 나섰던 열아홉 살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동생 유미는 똑같은 모델의 MP3 플레이어를 손에 쥐고 있었다.

"언니, 이 노래 진짜 좋아. 클래식인데 되게 슬프고 아름다워."

동생이 웃으며 말했던 마지막 대화. 그날 이후 유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제 동생 거예요."

박유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갈라져 나왔다.

"똑같은 모델이 아니라... 이게 바로 그거예요. 여기 이 긁힌 자국, 제가 실수로 떨어뜨렸을 때 생긴 거예요."

그녀는 MP3 플레이어 뒷면의 작은 긁힌 자국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떨렸다.

21년 전 실종된 동생의 물건이, 왜 11년 전 연쇄살인 용의자의 유품 상자에서 나온 걸까요?

한서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유진 씨, 확실해요?"

"네... 확실해요. 이건... 제 동생 거예요."

박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21년 동안 찾아 헤맸던 동생의 흔적. 그것이 이렇게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후 2시, 미스터리 수사대 사무실

사무실로 돌아온 팀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지수는 즉시 MP3 플레이어를 자신의 컴퓨터에 연결했다.

"전원은 완전히 나갔지만, 메모리칩은 살아있을 수도 있어요. 복구를 시도해 볼게요."

그녀는 데이터 복구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모니터의 복구 진행률 막대만이 그들의 타는 속을 대변했다.

박유진은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21년 전, 동생이 사라진 그날도 비가 내렸다. 그날 이후 그녀의 인생은 멈춰 버렸다. 동생을 찾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동생의 흔적을 찾았다.


"...찾았어요."

이지수의 목소리에 모두가 그녀에게로 모였다.

"삭제된 파일이 있어요. 오디오 파일 하나. 노이즈가 심해서 필터링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재생해보세요."

강태우가 말했다.

이지수가 스피커 볼륨을 높였다.

치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앳되고, 겁에 질린 소녀의 목소리.


"...언니... 나... 여기 어딘지 모르겠어... 무서워..."

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박유진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21년 동안 단 하루도 잊어본 적 없는, 그녀의 동생 유미의 목소리였다.

"언니... 도와줘... 그 아저씨가... 그 아저씨가 이상해..."


그리고 그 직후, 소녀의 목소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다른 소리가 스피커를 채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낮게 흥얼거리는 콧노래. 기묘하게 뒤틀린 클래식 선율이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소름 끼치도록 불길한 멜로디.


"흐흐흐흐흐..."

남자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완벽한 악기가 되려면... 고통이 필요하지."

그리고 다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더욱 선명하게.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 하지만 그 안에는 불협화음이 섞여 있었다.


"이 음악..."

오민재가 중얼거렸다.

"베르디의 '레퀴엠'... 'Dies Irae'. 진노의 날."

강태우의 눈이 커졌다.

"11년 전 '조각가' 사건 현장에서도 이 음악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그럼..."

한서진이 말했다.

"21년 전 박유진 씨 동생 실종, 16년 전 제 언니의 죽음, 11년 전 '조각가' 연쇄살인, 그리고 어제 웹툰작가 공민혁씨 살해... 모두 같은 범인이에요."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강태우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그는 타임라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2006년: 박유진 동생(유미) 실종 - 클래식 음악 관련

2011년: 한서진 언니(한서영) 살해 - 피아노 강사

2016년: '조각가' 연쇄살인 - 모두 음악 관련 직업

2027년: 공민혁 살해 - 어릴 적 피아노 영재


"이 범인은 최소 21년 이상 활동해왔습니다."

강태우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리고 모든 피해자가 음악과 연결되어 있어요."

한서진이 물었다.

"범인에게 음악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집착이에요."

오민재가 대답했다.

"음악에 대한 병적인 집착. 그리고 그 집착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거예요."

"그럼 범인은 음악과 관련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박유진이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음악가, 음악 교사, 혹은 음악 관련 직업..."


이지수의 화면에는 수십 개의 사건 파일이 떠올라 있었다.

"2006년부터 2027년까지, 음악 관련 실종 및 살인 사건이 총 23건이에요. 그중 미제사건이 15건."

"15건..."

강태우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네요."

"그리고..."

이지수가 다른 화면을 열었다.

"'소나타 옵스큐라'라는 폐쇄형 클래식 동호회를 찾았어요. 회원 수 47명. 2005년에 만들어졌고, 지금도 활동 중이에요."

"회원 명단을 볼 수 있어요?"

"암호화되어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해주세요."


강태우는 화이트보드를 바라보았다. 21년간의 비극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강태우가 쫓던 '조각가'의 그림자, 한서진의 언니를 죽인 미지의 범인, 그리고 박유진의 동생을 삼킨 어둠이 하나의 선율 위에서 기괴한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마주한 것은 개별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한 명의 지휘자가 연주하는 거대한 악의 교향곡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지휘자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다음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완벽한 생은 없다. 모든 것에는 부서진 틈이 있다.
빛은 그 틈새로 들어오는 것이다.
(Forget your perfect offering.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 레너드 코헨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