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잊혀진 목소리
2027년 3월 17일, 오전 9시
사무실의 스피커에서는 기괴하게 뒤틀린 클래식 선율이 낮은 볼륨으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베르디의 '레퀴엠' 중 'Dies Irae'. 진노의 날.
하지만 박유진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낡은 MP3 플레이어를 손에 쥔 채, 21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열아홉 살의 언니가 되어 있었다.
21년 전인 2006년, 여동생 유미가 실종됐다. 경찰은 가출로 처리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동생을 찾기 위해 시작한 추적이 17년의 경력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가장 찾고 싶었던 이야기가 그녀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제가 직접 가야겠어요."
도시전설 연구가로서 수많은 사람의 기억을 파헤쳐왔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것은 그녀 자신의 잊고 싶었던 기억을 향한 여정이었다.
"혼자 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강태우가 말했다.
"괜찮아요. 동생의 친구들을 만나는 건데, 위험할 리 없어요."
박유진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여전히 MP3 플레이어를 꼭 쥐고 있었다.
"그래도 오민재 교수님이 동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강태우가 오민재를 바라봤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경기도 수원시의 한 카페.
그녀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동생의 옛 친구, 김수연이었다. 평범한 주부가 된 그녀는 21년 만에 나타난 친구의 언니 앞에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카페의 어색한 공기 속에서, 박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MP3 플레이어 속 동생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언니... 나... 무서워..."
수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컵을 든 손을 떨며 말했다.
"...유미 목소리 맞네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21년 전,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친구.
"수연아, 제발... 뭐라도 기억나는 거 있으면 말해줘. 유미가 실종되기 전에 뭔가 이상한 일 없었어?"
박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연은 한참을 망설이다, 아주 오래된 기억의 조각을 꺼냈다.
"유미가... 실종되기 몇 달 전부터, 어떤 선생님 얘기를 자주 했어요."
"선생님?"
"네. 학교 선생님은 아니었고... 클래식 음악을 가르쳐주는 분이라고. 아주 친절하고, 멋진 어른이라고 했어요. 유미는 그분을 정말 존경하는 것 같았어요."
박유진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 선생님, 이름이나 얼굴 기억나?"
"이름은... 기억 안 나요. 유미가 '선생님'이라고만 불렀거든요. 얼굴도 본 적 없어요. 그냥 유미가 자주 얘기했던 것만 기억나요."
"어디서 만났대?"
"어떤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서 만났다고 했어요.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거. 유미가 그분 덕분에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수연이 MP3 플레이어를 가리켰다.
"이 MP3 플레이어도 그분이 선물해줬다고 자랑했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이 나한테만 특별히 줬다'고 했어요."
박유진의 손이 떨렸다. 동생의 실종은 단순 가출이나 우발적 범죄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오랫동안 계획된, 정교한 사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동호회 이름 기억나?"
"잘 모르겠어요... 무슨 라틴어 이름같기도 하고..."
오민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소나타 옵스큐라'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으세요?"
수연의 눈이 커졌다.
"맞아요! 그거였어요. 유미가 자주 그 이름 얘기했어요."
같은 시각, 강태우와 한서진이 각자의 과거를 파고들고 있었다. 강태우는 11년 전 '조각가'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을 다시 만나고 있었다. 전화로, 직접 방문으로.
11년 전 확신에 차 있던 프로파일러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용서를 구하는 죄인의 얼굴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피해자들이 공유하는 아주 사소한 공통점이라도 찾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첫 번째 피해자, 이수진(당시 32세, 피아니스트)의 어머니를 만났다.
"수진이가... 실종되기 전에 온라인에서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 가입했었어요. 거기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죠."
두 번째 피해자, 박민호(당시 35세, 바이올리니스트)의 형도 비슷한 기억을 꺼내 놓았다.
"민호가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었어요. 클래식 음악 관련... 거기서 좋은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했어요."
세 번째 피해자, 최영희(당시 29세, 첼리스트)의 친구는 동호회의 이름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영희가 '소나타 옵스큐라'라는 동호회에 가입했었어요. 거기 관리자가 정말 친절하고 음악에 대해 해박하다고 했어요."
네 번째 피해자, 김태형(당시 38세, 오케스트라 단원)의 동료 역시 중요한 단서를 던져 주었다.
"태형이가 온라인에서 '마에스트로'라는 닉네임의 사람과 자주 대화했어요. 그 사람이 음악에 대해 정말 잘 안다고 했죠."
모든 피해자가 같은 동호회의 회원이었다.
소나타 옵스큐라(Sonata Obscura).
'어두운 소나타'라는 뜻을 가진, 지금은 폐쇄된 소규모 클래식 음악 동호회.
법의학자 한서진은 16년 전 언니의 노트북에 남겨진 디지털 기록을 다시 훑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가입 기록에서 멈췄다.
[소나타 옵스큐라 (Sonata Obscura)]
[가입일: 2010년 8월 15일]
[마지막 접속: 2011년 3월 2일]
언니가 살해당한 날은 2011년 3월 5일이었다. 마지막 접속 3일 후.
바로 그 순간, 강태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찾았습니다. 한 교수님. '조각가' 사건의 모든 피해자가... 클래식 음악 동호회 회원이었습니다. 아주 깊게 활동했던 것 같아요."
한서진의 손이 떨렸다.
"...동호회 이름이 뭡니까?"
"소나타 옵스큐라. 들어본 적 있습니까?"
전화기 너머로 두 사람의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서로 다른 비극의 주인공들이 하나의 무대 위에서 만나고 있었다.
"...제 언니도 그 동호회 회원이었습니다."
오후 5시, 미스터리 수사대 사무실
저녁이 되어서야 사무실로 돌아온 박유진은 핼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 동생, 실종 직전에 어떤 클래식 음악 선생님과 자주 어울렸다고 해요. 그리고 온라인 클래식 동호회에 가입했었대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지수가 말했다.
"공민혁 씨의 SNS 계정을 분석해봤어요. 2015년, 그가 손목 부상으로 피아노를 포기했을 때... 온라인 클래식 커뮤니티에 가입했었어요."
화면에 공민혁의 옛 SNS 포스트가 떠올랐다.
[2015년 6월 3일]
"피아노는 포기했지만, 음악은 포기할 수 없어요. 오늘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소나타 옵스큐라라는 커뮤니티. 여기서 다시 음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모든 피해자가 같은 동호회의 회원이었다.
이지수는 즉시 '소나타 옵스큐라'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오래된 게시글들, 회원 명단, 그리고...
"찾았어요. 관리자 정보."
화면에 관리자의 아이디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Maestro]
마에스트로. 지휘자.
그리고 그 아래에는 프로필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음악은 인생이고, 인생은 연주다. 나는 여러분의 지휘자가 되어주겠습니다."
그 단어를 본 순간, 팀원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사람이..."
강태우가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모든 걸 계획한 거예요. 21년 동안."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어요."
이지수가 말했다.
"모든 정보가 암호화되어 있어요. IP 주소도 추적 불가능하고..."
"회원 명단은요?"
이지수가 화면을 확대했다.
"피해자들의 이름이 모두 있어요. 박유미, 한서영, 이수진, 박민호, 최영희, 김태형, 공민혁... 모두 이 동호회 회원이었어요."
박유진이 화면을 응시했다. 21년 전, 열여섯 살이었던 동생의 이름. 그 이름이 지금, 살인 피해자의 명단 위에 떠 있었다.
"이 '마에스트로'를 찾아야 해요."
한서진이 말했다.
"이 사람이 모든 것의 시작이에요."
"하지만 어떻게요?"
"회원들을 추적하는 거예요."
강태우가 말했다.
"이 동호회에 가입했던 사람들 중,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해요. 그들이 '마에스트로'를 알고 있을 거예요."
모든 조각이 한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 선생님, '소나타 옵스큐라',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마에스트로'.
이것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사람들의 인생을 가지고 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주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수사대원들의 가장 아픈 과거 속에 숨어 있었다.
모든 잊혀진 것들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낸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다.
(All forgotten things have a voice of their own, we just don't hear them.)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