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1 : 편집된 낙원
저녁 7시, 30평 남짓한 아파트 식탁. 은수네 네 식구가 둘러앉았다.
여느 가정집 식탁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풍경이었다.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 그리고 네 사람의 귀에 꽂혀 있는 콩나물 모양의 하얀 이어폰, ‘하트비트(Heart-Beat)’.
이 작고 하얀 기계는 단순한 통번역기가 아니었다.
'감정 필터링 및 언어 순화 알고리즘'이 탑재된 최신형 웨어러블 기기였다.
상대방의 말에 담긴 가시, 분노, 비아냥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듣는 사람이 가장 상처받지 않을 '예쁜 말’로 의역해서 들려주는 기계. 정부가 '가정 불화 제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보급한 필수품이었다.
“아빠, 찌개 좀 줘요.”
고등학생 딸 지민이 무뚝뚝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버지 성철의 이어폰을 통해 들려온 목소리는 전혀 달랐다.
“아빠, 오늘 회사 일 힘드셨죠? 맛있는 찌개 같이 먹고 힘내요.”
성철의 굳어있던 입꼬리가 스르르 풀렸다.
“그래, 우리 딸도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지? 많이 먹어라.”
사실 성철이 실제로 내뱉은 말은 "폰 좀 그만 쳐다보고 밥이나 먹어."였다.
하지만 지민의 이어폰은 그 퉁명스러운 잔소리를 “우리 딸, 밥 든든하게 먹고 건강 챙겨야 해. 아빠가 늘 응원한다.”라는 따스한 격려로 바꿔 들려주었다.
지민은 밥을 먹다 말고 아빠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성철도 허허 웃었다. 엄마도, 중학생 아들도 모두 미소 짓고 있었다.
그들의 입은 쉴 새 없이 불평과 잔소리, 무관심한 단어들을 뱉어내고 있었지만, 귀에는 서로를 향한 사랑과 배려, 감사의 말들만이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과 함께 흘러들고 있었다.
이 식탁은 완벽하게 평화로웠다.
거짓말처럼 조용하고, 징그럽게 화목했다.
사건은 식사 도중, 거실의 스마트 허브가 오작동을 일으키며 시작됐다.
갑작스러운 전력 과부하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집안의 모든 무선 네트워크가 차단되었다. 거실 전등이 깜빡거렸고, 동시에 네 식구의 귀에 꽂혀 있던 '하트비트’의 연결 표시등이 붉은색으로 바뀌며 꺼져버렸다.
“어? 와이파이 나갔나 봐.”
아들 준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이어폰을 뺐다.
순간, 식탁 위를 감싸고 있던 따뜻한 막이 걷히고 날것의 정적이 찾아왔다.
성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숟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밥 먹는데 폰 좀 그만 보라니까! 넌 대체 누굴 닮아서 그렇게 산만해?”
필터가 사라진 성철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거칠었다. 지민은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 "응원한다"던 아빠가 1초 만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빠는 왜 맨날 소리부터 질러? 밥 먹는데 체하겠네, 진짜.”
지민의 대꾸 역시 필터를 거치지 않자 날 선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성철은 멍해졌다. 상냥하던 딸의 목소리가 아니다.
“당신은 애한테 말을 왜 그렇게 해? 좋게 말하면 못 알아듣나?”
아내 역시 쏘아붙였다. 그녀의 목소리 톤은 성철이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높고 신경질적이었다.
“뭐? 당신이야말로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집에 들어오면 폰만 보고 인사도 안 하잖아!”
“당신이 언제부터 인사받았다고 그래? 집에 오면 소파랑 한 몸이 되는 사람이!”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준호는 귀를 막았다. 그동안 이어폰 속 AI가 "조금만 조용히 해줄래?"라고 부드럽게 들려주던 부모님의 싸움 소리는, 사실 "당장 집어치워!"라는 고함과 욕설이었다.
이들은 서로의 진짜 목소리를 잊고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AI가 마사지해 준 부드러운 언어에 취해, 서로가 얼마나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사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야! 너 말 다 했어?”
“아빠야말로 왜 그래요? 진짜 짜증 나게!”
식탁 위로 찌개 국물이 튀고, 밥그릇 뚜껑이 바닥을 굴렀다.
그동안 쌓여있던, 그러나 전달되지 못했던 수천 개의 오해와 불만들이 댐이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AI가 '사랑해’로 번역해서 덮어두었던 썩은 감정들이 악취를 풍기며 거실을 가득 메웠다.
그때, 거실 조명이 다시 환하게 켜졌다.
“네트워크 복구 완료. 하트비트를 재연결합니다.”
기계적인 안내 음성과 함께, 네 사람의 이어폰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딩- 동-
연결음이 울리자마자, 성철이 씩씩거리며 내뱉던 "이런 빌어먹을 집구석!"이라는 고함소리가 뚝 끊겼다.
대신, 지민의 귀에는 성철의 목소리가 이렇게 들려왔다.
“...우리 가족이 서로 조금만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어떨까? 아빠는 너희를 정말 사랑한단다.”
성철의 귀에도 지민의 악에 받친 비명 대신,
“죄송해요 아빠, 제가 요즘 예민했나 봐요. 사랑해요.”라는 차분한 AI 음성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네 사람은 거칠게 몰아쉬던 숨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봤다.
방금 전까지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던 눈빛들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그들의 귀에는 다시금 천사들의 대화가 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뇌리에는 방금 들었던 날것의 비명과 욕설이 생생하게 박혀 있었다.
성철은 떨리는 손으로 수저를 다시 들었다.
아내도, 지민도, 준호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안다.
지금 귀에 들리는 이 달콤한 말들이 전부 가짜라는 것을.
하지만 그 누구도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진실을 마주하기엔, 그들의 관계는 이미 너무 곪아 있었고, 서로의 맨살은 너무나 아팠으니까.
달그락. 달그락.
다시 평화로운 수저 소리만이 거실을 채웠다.
가장 완벽한 오해와, 가장 비겁한 평화가 공존하는 침묵의 식탁이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