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나는 한동안
감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좋은 일이 생겨야
하는 줄 알았고
웃을 수 있어야
가능한 감정인 줄 알았고
마음이 넉넉할 때만
허락되는 상태인 줄 알았다
그래서 힘들 때는
늘 감사하지 못한 나를 탓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감사해야 하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멈췄다
많은 일들이 지나가고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요즘
오늘은
생각보다 더 무너지지는 않았다
기쁘지도 않았고
행복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그냥
오늘이
나를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순간
마음이 조금 내려앉았다
무언가를 얻어서가 아니라
더 잃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였다
감사는
기쁨이 아니라
안전의 감각이라는 걸
감사는
웃는 얼굴이 아니라
숨이 조금 편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감사를
억지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찾아내려 하지 않고
증명하려 하지 않고
괜찮은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지금 이 상태가
조금 덜 위태롭다는 사실을
가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감사는
말이 많지 않았다
설명도 없었고
표현도 필요 없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이유도 없었다
그저
마음이
내가 정한 세계와
잠시 싸우지 않는 상태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요즘의 감사는
조용하다
눈물이 나지도 않고
감동도 크지 않다
대신
생각이 잠시 멈추고
몸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눈을 감고 내 마음을 본다
감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태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내가
잠시 다치지 않았다는
확인 같은 것이라는 걸
오늘도
완전히 괜찮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나를
그냥 그대로 두어도 되는 순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렇게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