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는 한동안
고요를 피했다
아무 소리도 없는 시간에
자꾸
나만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을 때보다
생각이 없을 때보다
고요할 때가
제일 시끄러웠다.
고요 속에서는
숨이 먼저 들린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감각
어디에도 기대지 않은 채
그냥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
그게
생각보다 무거웠다
사람들 속에서
나는 흐려진다
역할이 생기고
표정이 생기고
말의 목적이 생긴다
그 사이에서
나는 잘 숨는다
하지만 고요는
숨길 곳을 주지 않는다
고요는
위로가 아니다
고요는
정답도 아니다
고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아직 붙잡고 있던 것들을
조용히 드러낸다.
나는 종종 착각한다
고요해지면
평온해질 거라고
하지만 고요는
평온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도망칠 수 없게 만든다
고요 속에서는
이유 없는 불안이 올라오고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이
형태 없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왜 이 방향이었는지
왜 아직 여기에 서 있는지
고요는
묻지 않는데
나는 자꾸 대답하려 든다
삶의 무게를 견디고
어느 날 포기가 오고
삶의 무게를 놔버린 날
고요는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고요는
생각을 멈추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이 나를 대신해
살지 못하게 할 뿐이다
고요에 오래 머물수록
나는 조금씩
덜 급해진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아직 이름 붙이지 않아도
괜찮은 감정들
그것들이
조용히 제자리를 찾는다
고요는
무언의 기준이다
무엇을 선택하라고 말하지 않고
무엇을 버리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어떤 상태로
이 선택 앞에 서 있는지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고요를
찾지 않으려 한다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않고
억지로 붙잡지도 않으면서
고요가 올 때
잠시 자리를 내어주려 한다
고요는
비움과
머무름이 아니다
고요는
잠시 멈추고 지나간다
아마
고요는 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고요가 지나간 자리에는
더 이상
남의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
내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