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정보를 다루지만 인간은 의미를 다룬다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 김성우 / 유유

by 솔솔부는 책바람

삶에 뿌리박은 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웹상의 방대한 언어 빅테이터가 아니라,

여태껏 자신이 걸어온 길 그리고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자리에 맞는 정확하고도 온기를 담은 언어입니다. 그리고 때로 그 언어는 침묵이고, 주저함이고, 끝맺지 못한 문장이고, 떨림이며, 푹 숙인 고개입니다.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p.131


수능을 마친 둘째는 요즘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하루를 보낸다.

손에서는 좀처럼 휴대전화를 놓지 못한 채 끝없이 이어지는 영상들을 넘기다 잠들기 일쑤다.

그동안 고생한 아이를 보며 애써 마음을 눌러보지만 마음 한켠에 우려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책 한 권을 건네보았지만 책은 며칠째 제자리에 그대로 놓여있다.



릴스와 쇼츠 같은 짧은 자극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활자를 읽는 일은 이제 고문이 되어버린 걸까.

책 읽기와 멀어지는 풍경은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닌 이 시대가 겪고 있는 하나의 증상처럼 보인다.

이런 고민 속에서 인공지능은 나의 일기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를 읽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의 광범위한 부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결과가 과정을 삭제하는 경향 나아가 과정을 귀히 여기는 관점을 무시하는 습속의 강화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현대차가 머지않아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를 생산현장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듯 기술은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나아가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창작과 사유까지 대신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안부 인사를 고민할 때조차 AI는 가장 매끄러운 답안을 순식간에 제안한다.



이 편리함 앞에서 자연스레 떠오른 책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였다.

소설 속 시민들은 불편함이나 고민이 생기면 '소마'라는 알약을 삼키며 고통이 없는 안락함 속에 머문다.

몇 초 만에 완벽한 답을 내놓는 AI의 모습은 이 '소마'와 참 닮아 있다.

그러나 과정이 빠진 결과는 공허하다.

문장을 곱씹고 생각을 붙잡는 시간을 거치지 않는다면 AI가 건네준 답은 내 삶의 무게를 지탱해 줄 지혜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리터러시는 결국 '실천하는 몸의 운동'으로 명사가 아닌 동사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우리는 '읽고 쓰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

단순히 정보를 읽고 이해하는 수준의 문해력을 넘어 이제는 '리터러시(Literacy)'가 중요해진다.

리터러시는 다양한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쓰기가 점점 자동화될수록 그 토대가 되는 읽기는 더 중요해진다.

무엇을 읽고 어떻게 연결하며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실천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쓰기를 언어와 세계를 씨줄과 날줄로 엮는 연대의 과정으로 볼 때라야 글은 삶이 되고 삶은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p.435


기술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기 이전에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세계와의 연대 속에서 세계관을 단단히 세우는 과정이 먼저여야 한다.

주체적인 시선으로 읽고 쓸 때 비로소 인공지능은 나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 사유를 확장해 주는 도구가 된다.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중략)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멋진 신세계 p.362


멋진 신세계의 야만인 존은 안락한 통제를 거부하며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했듯 지루함을 견디며 책장을 넘기는 시간과 스스로 생각하기에 애쓰는 고통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빚어낸다.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와 쓰기를 바꿀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방향은 결국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매끄러운 결과에만 기대기보다 서툴더라도 직접 읽고 써 내려가는 '과정'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존이 갈망했던 진짜 자유에 가까워지는 길이며 인공지능 시대를 진짜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