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T 게임 제작기 1
게임 개발의 시작과 투병기
세상에는, 물건을 못 찾겠다고 말하고 나면 꼭 찾던 물건이 보이는 것처럼, 절대 못하겠다고 말하면 오히려 하게 되는 묘한 법칙이 있는 것 같다.
2020년 무렵 카페에서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생각나는데....
친구 1 : "요즘 다들 인디 게임이나, 1인 앱 만든다는데 너도 한번 해봐."
나 : "1인 개발을 어떻게 해? 나는 끊기 없어서 절대 못해"
친구 2 : "에이 뭘,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친구들과의 대화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1인 게임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정확히는 CBT(Cognitive Behavioral Therapy, 인지행동치료)를 기반으로 하는 비주얼 노벨 형식의 게임으로,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일주일을 다시 살게 되는 내용이다.
처음 해본 1인 개발은 생각보다 훨씬 외롭고 고됐다. 기획부터 프로그래밍, 아트, 시나리오까지 혼자 부딪혀야 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 과정들이 더욱 지난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개발은 70% 정도 완성됐다. 예전에는 완성이 가까워지면 신나고 의욕에 불탈 줄 알았는데, 막상 종점이 눈앞에 오니 실감은커녕 워낙 오래 걸어온 길이라 정말 끝이 오긴 오는 걸까 싶기도 하다.
게임은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기에, 처음부터 마음을 정해뒀었다. 그래서인지 그만큼 하루빨리 세상에 내놓고 싶기도 한데, 아마 별 문제가 없다면 올여름에는 게임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요즘은 열심히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
진작에 개발 기록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글을 쓴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어려워서 미루고 미루다 오늘까지 와버렸다.
그래도 늦은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이곳에 개발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다만...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말이면 쉬웠을까 싶다.) 어쨌든 기록을 한다는 건 어떻게든 완성을 하겠다는 나의 의지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에는 세 개의 시작점이 있다.
첫 번째는 2021년 11월, 게임 업계를 떠나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내려온 달로 모든 것의 시작이 된 시점이다. 두 번째는 2022년 12월, 몸이 무너지면서 오히려 심리학을 공부하고 지식을 쌓게 된 시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모든 시간을 돌고 돌아 겨우 개발에 착수한 2024년 5월이다.
처음 개발을 시작한 건 24년 5월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인 26년 2월에서 바라보자면 벌써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8개월이 지난 것이다.
분명 개발을 시작할 때 만 해도 1년이면 끝나겠지 싶었는데... 참 오래도 걸리는 것 같다.
그렇다고 1년 8개월 동안 열심히 달렸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하지는 못할 것 같다. 허리 디스크 파열로 인한 신체적 통증과 기존에 겪던 우울, 불안 장애로 모니터 앞에 앉는 것조차 힘들었던 날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한때는 게임 개발자로 일하며 밤을 새우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 내 몸은 컴퓨터 앞에 앉는 것조차 고통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를 놓지 못한 건... 이 과정 자체가 다시 일어서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자 긴 아픔의 시간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진짜 시작점은 어디일까. 나는 개발을 시작한 24년보다 훨씬 이전인 2021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가려 한다.
21년 11월은 내가 일했던 게임 업계를 그만두고 부모님이 계신 지역으로 내려온 달이었다.
게임 회사를 다니며 생긴 극도의 번아웃과 우울증, 불안, 강박, 공황 — 현대인의 절반이 가지고 있다는 병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내려온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두 달쯤 쉬고 나자 정신이 든 나는 직업 변경을 위해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바리스타를 배우며 천천히 재활과 휴식을 병행해 나갔다.
다행히 1년쯤 지나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좋아짐을 느꼈고 본격적으로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운동과 포트폴리오에 더 힘쓰게 됐다.
하지만 22년 12월 말.
필라테스 강사로 인해 허리디스크가 찢어지면서 신경이 손상돼, 극심한 통증으로 한 발짝 걷는 것도 힘들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통증은 26년 2월인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반신 경련과 지속적인 통증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인간이 고통 앞에서 얼마나 약해지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디스크 탈출이 아니라 내 몸이 이승을 탈출할 듯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인 시간들이었다.
재활을 하며 간신히 끌어올렸던 정신은 몸이 무너지자 허무할 정도로 쉽게 따라 무너졌다. 몸이 망가져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버거웠던 나에겐 슬픔과 절망, 두려움밖에 남지 않았고, 그렇게 30대 초중반의 삶을 통증과 우울이라는 어둠 속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시 무너진 마음은 더욱 가혹하게 변해 스스로를 찔렀다. 다시 일어날 수는 있을지, 걸을 수 있을지, 사회로 복귀하는 건 가능할지, 삼십 대 초중반의 내 나이에 어디 갈 곳이 있을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 스스로가 실패자이자 저주받은 사람으로 느껴졌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머리가 터질 듯 차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에 휩쓸려 울거나 잠들었고, 에너지가 좀 올라오는 날에는 SNS나 유튜브로 도피했다.
얼마나 그 패턴을 반복했을까. 이런 패턴이 몇십 번, 몇백 번 반복하자 조금씩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비이성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면서, 왜 나는 이런 상태인지, 어째서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병으로 인한 우울감이 아닌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비틀린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마침 통증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야 했기에 강제로 주어진 자유 시간이 많았고, 그게 오히려 궁금한 것들을 공부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됐다.
누워서 하는 공부가 집중이 잘 될 리 없었지만 그래도 책을 읽고 강연을 보고 노트 정리를 할 수 있다는 것과 손과 눈은 자유롭다는 것에 감사하며 조금씩 나만의 속도로 나아갔다.
그리고 때마침 두 가지 행운이 찾아왔다. 하나는 담당 정신과 선생님께서 심리학, 정신의학 관련 질문을 늘 흔쾌히 받아주신 덕에 수월하게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직 심리 상담사가 이끄는 온라인 심리학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마 세상이 내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건넨 작은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흘러갔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아픈 것과 상관없이 '한 달이면 낫는다는데 너는 왜 아직도 아프냐' 혹은 '30대나 되어서 부모에게 의탁하는 백수냐'며 나에게 물었고 나는 그 시선에 기가 죽어 자꾸만 움츠러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 — 울며 재활하고, 책을 읽고, 강연을 듣는 것들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 나름의 시간 속에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던 건데 주변의 시선과 자기 검열, 그리고 막막한 미래가 나를 호되게 짓눌렀던 것 같다.
그래도 조금씩 버티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1년쯤 지났을 때에는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겪는 고통을 무조건적인 절망으로만 바라보던 시각이 조금씩 달라져, 어느 정도는 수용하고 흐름에 따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잘 안 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예전의 나보다는 조금 나아졌으니 그걸로 됐다 싶다.
어쩌면 외상 후 회복처럼, 슬픔과 절망이 내면의 성장으로 바뀌기 시작한 작은 발돋움이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4년 4월.
부상으로부터 1년 반이 지나서야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제야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고, 나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따라왔다.
그리고 그 다음 달인 5월에는 힘들었던 시기에 큰 힘이 되어주었던 CBT(인지행동치료)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왜 하필 CBT(인지행동치료)였는지, 그리고 왜 게임이라는 장르를 선택했는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