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뭐 맛있는 반찬 없어요?"
어릴 적 우리 집 저녁 식탁. 오늘도 어제와 같은 시래기 무침이 올라왔다. 사실 맛있었다. 하지만 어린 내게는 어제의 반찬이 오늘 또 나온다는 게 시시했다. 나는 젓가락으로 시래기를 이리저리 굴리기만 했다. 밥그릇 속 하얀 밥알들은 내 무관심 앞에서 서서히 식어갔다.
"잘 먹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밥그릇엔 아직 반공기나 되는 밥이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아빠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김치 한 조각을 슥- 내 밥그릇에 떨어뜨렸다.
"아들, 밥을 깨끗이 남겨야지 이게 뭐야?"
"어? 나 깨끗이 남겼는데?"
형과 누나가 킥킥거린다.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남은 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억지로 씹는 밥맛은 왜 그렇게 싱거웠을까.
"아~ 배불러서 안 먹으려고 했는데..."
"너 음식 남기면 지옥 가서 네가 남긴 음식 다 먹어야 해."
엄마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전혀 없었다. 진짜 지옥이 있고, 정말로 그곳에서 내가 남긴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좋지. 아껴 뒀다 그때 먹으면 되겠네."
"아니지, 네가 남긴 거 다 섞여 있을 텐데? 괜찮겠어?"
순간, 머릿속에 끔찍한 장면이 그려졌다. 내가 남긴 모든 음식들이 한 그릇에 뒤섞여 있는 모습. 식은 밥, 눅눅해진 김치, 굳어버린 국물...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찡그려졌다.
엄마, 아빠에게 어린 시절은 지금 내가 아는 '어린 시절'과 달랐다. 밥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부모님께 혼나서가 아니라, 정말 먹을 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리밥에 물 말아서 먹는 게 최고 별미였어."
엄마가 가끔 들려주시던 이야기였다. 그 시절 하얀 쌀밥 한 그릇은 지금 내가 아는 그 이상의 의미였다. 한 톨, 한 톨이 모두 소중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정말 음식을 남기지 않으셨다. 내가 남긴 밥을 모아서 물에 말아 드시고, 조금 남은 반찬은 다음 날 찌개 끓일 때 넣으셨다. 그 모습이 당연했다. 엄마의 몸에 새겨진 가난의 기억이 그렇게 시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였던 나에게 그 풍경은 불편했다. 특히 엄마가 내가 남긴 밥을 드실 때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내가 음식을 남김으로써 엄마가 그것을 드시게 만든다는 죄책감. 그래서 가끔은 툴툴거렸다.
"어이구, 벌 받으려고 이렇게 음식을 남겨."
"엄마, 그냥 좀 버려요. 지저분한데 그걸 왜 다시 드셔요."
"야! 왜 버려. 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
엄마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있었다. 그 단호함 뒤에는 내가 모르는 배고픔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어른이 되면서, 그 죄책감이 습관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밥그릇에 밥풀 하나라도 남으면 괜히 미안해지고, 음식이 남으면 내가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주부가 된 후엔 더 심해졌다. 아이들이 음식을 남기면 눈이 뒤집혔고, 남은 음식을 버릴 때마다 가슴이 찔렸다. 그 불편함을 피하고 싶어서 나는 어느새 엄마처럼 아이들이 남긴 음식을 모아서 먹고 있었다.
식탁에 혼자 남아, 아이들의 찬밥을 입에 넣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어릴 때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며 "그러지 마세요"라고 짜증 냈던 그 아이가, 지금은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주부가 되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일 거다.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일. 죄책감은 점점 커져서 자책감이 되고, 결국 나 자신을 비하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억지로 남은 음식을 먹는 일이 나를 지키는 방법도, 환경을 지키는 방법도 아니라는 것을. 알뜰하게 사는 것과 죄책감에 묶여 사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엄마가 버리지 못했던 건 그 시대의 필연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이제는 알뜰함과 버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 죄책감까지도.
오늘도 상한 음식을 버릴 때면 여전히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조금씩 배워간다. 적당량의 음식을 하고, 덜어 먹고, 골고루 먹는 법을. 남기는 음식을 최소화하는 법을.
어쩌면 진짜 지옥은 버리지 못해서 받는 죄책감 속에 있는 게 아닐까. 버려야 할 것을 버릴 때, 주부의 밥그릇은 비로소 온전히 내 것이 된다. 그때서야 나는 정말로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주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