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되던 해 나는 처음으로 집을 나왔다. 나에게 출가는 단순히 집을 떠나는 일이 아니었다. 프로 주부의 보살핌 아래 있다가 스스로 주부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강남의 작은 원룸을 얻고, 살림살이를 갖췄다. 난 프로주부의 어깨 너머로 본 것이 있기에 자신 있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밥, 계란프라이, 라면, 콩나물국 정도는 거뜬했다. 빨래, 청소도 군대에서 갈굼 당하면서 몸에 익혔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주부 생활이 강남에서 시작됐다.
강남 주부의 삶은 처음엔 너무 좋았다. 출가하고 일주일 동안은 매일 밥을 해 먹었다. 혼자 먹는 밥도 정성껏 차려서 격식을 갖춰서 먹었다. 어떤 날은 내가 끓인 참치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어서 마트에 가서 소주 한 병을 사 왔다.
“캬~ 이건 그냥 먹을 수 없지!”
난 내가 한 반찬이 제일 맛있었다. 입맛에 맞춰 간을 하니 당연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프로 주부에게 물려받은 손맛 DNA 덕이었을 것이다.
나의 음식에 감탄을 하던 날들도 잠시, 어느 순간 나는 모든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일을 하고 늦게 퇴근을 해서 요리를 해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매일 퇴근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프로주부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과 새로운 반찬을 먹기만 하면 되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프로주부는 일하고 들어와서 다섯 식구의 밥상을 차렸는데, 나는 내가 먹을 한 끼 차리는 것도 버거웠다. 퇴근할 때마다 머릿속엔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 결국 동료들과 저녁 약속을 잡거나, 배달 음식을 포장해 오고, 때로는 그냥 굶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저녁 약속이 잦아졌고, 반주로 먹던 술은 늘 2차, 3차로 이어졌다. 늦게 온다고 잔소리하는 주부도 없으니 나의 인생은 집 나온 사춘기 소년처럼 통제력을 잃었다.
그날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아침 해가 뜨고서야 술집에서 나와 집으로 걸었다. 쌀쌀한 새벽바람이 뺨을 때리며 정신을 깨웠다. 담배를 물고 비틀비틀 걷던 나는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 미화원의 기합 소리에 갑자기 어떤 장면 속에 빠지게 되었다.
씬 1 – 강남의 어느 골목길, 새벽 6시
(30대 남성은 손에 담배를 들고,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면서 걷는다. 똑바로 걸으려고 애쓰지만 발은 팔자를 그린다. 저 멀리 환경 미화원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환경미화원 A: 으랏차! 오늘따라 쓰레기가 더 무겁구먼.
환경미화원 B: 그러게 뭘 이렇게 많이들 먹는 거야.
환경미화원 A: 아침까지 저렇게 술 먹고 비틀거리는 사람도 있잖아.
환경미화원 B: 쯧쯧. 젊은 나이에 열심히 일은 안 하고.
(남자에게는 미화원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앞을 지나간다.)
이런 영화 속 한 장면이 그려졌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나를 스쳐 지나간다. 나는 그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똑바로 걸으려 했지만 발이 잘 말을 안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내 방을 보았다. 여기저기 흩어진 옷가지, 쓰레기들, 쌓아 둔 설거지 거리들, 텅 빈 냉장고, 퀴퀴한 냄새. 방의 모습은 곧 내 모습이었다.
주부가 자신의 일을 다하지 않을 때 집안의 모습은 처참했다. 우리가 집 안에서 누리는 어떤 것도 주부의 희생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깨끗한 옷, 청결한 거실, 세탁된 운동화, 정돈된 살림, 맛있는 음식, 분리되는 쓰레기. 모두 당연하게 누렸지만 하나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뭐 하나 당연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혼자 살면서 처음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난 새벽까지 술 먹고 비틀거리지 않았다. 강남에 살던, 시골에 살던 주부가 해야 할 일은 똑같다. 귀찮다고 안 할 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손 놓을 수도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시간을 들여 관심을 갖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난다.
난 강남 주부로 살면서 처음으로 관악구에 사는 프로 주부가 생각났다.
미안했고, 감사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