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를 공짜로 누렸다

by 솔솔솔파파

어머니의 직업은 주부였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일하면 많든 적든 돈을 받지만, 주부는 하루 종일 일해도 살림노동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엄마, 내 교복 빨았어?”

“엄마, 맛있는 반찬 없어?”

“엄마, 용돈 좀 줘요.”

“엄마, 내 물건 치웠어?”

“엄마,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

“당신은 집에서 하루 종일 뭐해?”


우리 가족은 모두 주부의 노동을 누리면서 살았다. 하지만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아도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은 없었다. 요구는 당당했고, 보상은 드물었다.

“엄마, 고마워.”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엄마, 오늘 너무 예뻐요.”

“엄마가 최고야.”

“엄마 사랑해요.”


이런 돈이 들지 않는 보상도 자주 하지 못했다. 주부는 보상이 없어도 매일 똑같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교지에 내가 쓴 시가 선정되어 실린 적이 있었다. 제목은 <엄마의 냄새> 이었다.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랬다.


<엄마의 냄새>

엄마에게는 특별한 냄새가 있다.

엄마 옆에 누우면 나는 엄마 냄새

새콤한 마늘 냄새

구수한 된장 냄새

매콤한 김치 냄새

이 냄새는 가족들을 위해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일하신

엄마의 사랑 냄새

화려한 향수 냄새보다

나는 이런 엄마의 냄새가 더 좋다.


나는 교지를 가져와 내가 쓴 시가 있는 곳을 펼쳐서 어머니께 보여 드리면 말했다.


“엄마, 내가 시를 썼는데 뽑혀서 교지에 실렸어.”


나는 그냥 어머니한테 “와~ 잘썼네.”라고 칭찬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시를 읽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난 당황스러웠다. ‘이 시가 뭐가 그리 감동적이라고 눈물까지 흘리실까?’ 잠시 후 어머니는 그 교지를 더 구할 수 없는지 물으셨고, 난 친구들에게 수소문해서 교지를 몇 권 더 얻어다 드렸다. 어머니는 그것을 친척과 친구들에게 자랑처럼 나눠주셨다. 그리고 다음 날 나를 부르셨다.


“아들, 이리와봐.” 어머니의 표정은 밝고 설레는 모습이셨다.

“네~ 왜요?” 학교 갔다 와서 난 어머니 앞에 앉았다.

“자~ 이거.” 어머니는 작은 쇼핑백을 건네 주셨다.

“이게 뭐예요?” 난 호기심에 어머니가 건네주는 쇼핑백을 받았다.

“너 예전에 이거 갖고 싶다고 했잖아.” 어머니는 여전히 웃고 계셨다.


난 조심스럽게 쇼핑백 안에 있는 박스를 꺼내 보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미니 카세트 ‘삼성 마이마이’였다. 그 시대에 미니 카세트는 지금의 핸드폰과 같은 큰 선물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처음 핸드폰을 받으면 뛸 듯이 기뻐하듯, 옛날에는 ‘마이마이’, ‘워크맨’ 이런 것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었다. 가격도 꽤 비쌌다.


사실 너무 기뻤지만 솔직하게 꼭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듯 말한 걸 어머니가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생일도, 어린이날도, 크리스마스도 아닌 날 어머니에게 선물을 받은 적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 당시 난 뜻밖의 선물에 기분이 좋아서 그 뒤로도 어머니와 관련된 글을 몇 편 더 썼지만 다시는 선물을 받지는 못했다. 순수함이 없는 글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어머니는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고단한 살림을 하시는 것은 아니셨겠지만 그 가치를 누군가가 인정해 주었을 때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덜 외로워지신다는 것이다.


다들 주부의 노동을 공짜로 누린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보상 없이. 내가 하는 일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임을 알 때, 주부도 버틸 힘을 얻는다.


어쩌면 주부에게 가장 힘든 것은 가사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일을 매일 똑같이 반복하면서 느끼는 ‘쓸모없음’일지 모른다.

이제 주부를 공짜로 누리지 말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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