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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쏠이 Jan 16. 2024

태국 디자인스튜디오 방문기!

배쏠이, Line Per Ink Studio에 가다

태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경진님, 태국에 계시면 이 스튜디오에서 이 책 한 권 사서 한번 보셔요. 엄청 좋아하실 것 같아요.”라는 문장과 함께 사진 몇 장이 날아들었다. 총천연색 표지에 적힌 태국어 제목 아래 적힌 영문 제목은 “Soy Sauce from The Southern of Thailand”. 무려 “태국 남부의 간장”!! 평소에도 소스의 역사와 라벨의 모양새에 관심이 상당히 많기에 이 책을 보자마자 꼭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을 펴낸 곳은 치앙마이에 있는 ‘Line Per Ink Studio’라는 곳이었다. 책의 생김새만 딱 봐도 일반 서점에서는 찾기 어렵게 생겨서 이 업체가 운영하는 서점이나 오프라인 샵이 있는지 정보를 샅샅이 뒤졌다. 어차피 치앙마이에 갈 예정이라 간 김에 매장에 들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게 웬걸 구글에 업체명을 검색하고, 구글 지도에도 따로 검색해 보고, 인스타그램에 있는 링크를 통해 업체 사이트에 들어가 봤는데도 오프라인 매장이 없었다! 책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서점으로 가는 일인데, 서점이 없다니! ‘ Bangkokcitycity 방콕시티시티’라는 예술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에도 갔었는데 이 책은 없다고 하더라.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고 나는 용기를 내어 “서점을 찾을 수 없다면 사무실에라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열정을 보일 정도로 이 책이 궁금했고, 이 책을 만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 DM으로 메시지 하나 달랑 보내는 건 너무 예의 없을 것 같아서 연락처에 있는 e-mail로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퇴사는 여행>에서 읽은 대로 이 사람들이 나를 만나줄 이유를 충분히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지만, 이 사람들이 나를 만나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언어를 최대한 고르고 골라 치앙마이 여행을 떠나기 직전 방콕에서 메일을 썼다. 하루 뒤에 답변이 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본 답장 속 가장 중요한 내용은 “We're happy that you coming to visit us. 방문해 주신다니 기뻐요.” 이 문장을 본 내가 더 기뻤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초대해 준 게 너무 감사했다. 방문 허가를 받고 난 이후로 일정이 안 맞아서 못 갈 뻔했지만, 너무 감사하게도 사무실 일정까지 조율해 주면서 치앙마이 여행 마지막 날 대망의 Line Per Ink Studio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치앙마이 여행 마지막 날에 방문할 수 있었던 게 참 다행이었는데, 치앙라이-치앙마이 여행 기간 내내 아프다가 마지막 날 즈음에야 많이 나아졌다. 덕분에 좋은 컨디션으로 사무실에 방문할 수 있었다.

여정의 서막을 알리는 메세지


Line Per Ink Studio는 치앙마이 관광지와는 꽤 떨어져 있는 한적한 동네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이런 곳에 사무실이 있다고?” 싶은 마음을 안고 구글 지도를 따라 조금 걷자, 뭔가 멋있어 보이는 주황 벽돌 건물이 나타났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그간 연락을 주고받았던 ‘Bogie’가 나를 환하게 맞이해 주었다. 처음 만나서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막상 갔는데 할 말 없을까 봐 스튜디오 포트폴리오도 다 보고, 판매하는 작업물도 파악해 가고 몇 가지 질문도 생각했는데, 이런 준비가 무색할 정도로 대화가 잘 이어졌다.

Line Per Ink Studio는 치앙마이에 있는 디자인 & 인쇄 전문 업체이다. 이곳에서 만든 책이 궁금해서 찾아간 거라 출판사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곳은 출판사도 아닌데, 왜 책을 만들었을까?”가 스튜디오에 방문하기 전에 생긴 큰 질문거리 중 하나였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무실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전문적인 디자이너이자 인쇄 기술자들인데, 다양한 인쇄 기술을 바탕으로 감각적인 디자인 작업을 마구마구 실험하고 있었다. “Soy Sauce from The Southern of Thailand” 책도 이러한 실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 다양한 작업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인쇄 기술을 선보이기 위한 단순한 작업이 아닌 디자인과 기술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다. Line Per Ink Studio에는 태국에 1대밖에 없는 레진 인쇄 기계도 있을 정도로 다양한 프린팅 기법을 시도할 수 있는 곳이다. 자유로운 시행착오가 이루어지는 공간인 만큼 질 높은 작업물이 산출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설명(왼쪽부터)

1. 사무실 한편에 진열되어 있는 작품들

2. 나를 Line Per Ink Studio로 이끈 작품

3. 다양한 작품과 리소프린팅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는 'Stang'


또 다른 엄청 멋진 작업 영상 링크

https://www.instagram.com/reel/CrjJZ8eu6E_/?igsh=NXN3bzNiMThrOG42


나를 이곳으로 이끈 “Soy Sauce from The Southern of Thailand”라는 책은 디자이너 ‘Bogie’의 작품 중 하나다. 건축을 전공한 ‘Bogie’는 중국계 태국인으로 자기 뿌리와 맞닿아 있는 중국식 건축 양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기 뿌리에 대한 관심이 남부 지역 곳곳에 남아 있는 로컬 소스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태국에 중국인 이민자들이 많이 이주해 오면서 다양한 소스와 조미료 문화가 함께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에 ‘Bogie’와는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에는 여전히 초창기 이주 시절부터 만들어진 소스가 많이 남아 있고 이 중 몇 개는 대형 마트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책도 각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지역 간장’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소스마다 가지고 있는 특색 있는 라벨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고 어느 지역 소스인지, 재료는 무엇인지도 볼 수 있다. 책에 삽입되어 있는 라벨지 일러스트는 라벨의 본모습을 헤치지 않으면서 좀 더 세련되게 디자인되었다. ‘Bogie’가 책 작업 과정을 설명해 주면서 A4용지에 붙여둔 간장 라벨지를 보여주었다. 간장병에서 라벨을 떼어 종이에 붙이고 스캔해서 디자인하고 리소프린팅 방식으로 인쇄했다고 한다. 종이에 붙어있는 라벨을 보니 “나도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달까? 책을 만들기 위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간장 시식도 진행했다고 하는데 한 분은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려버린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나도 책에 수록된 간장 몇 개를 맛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 너무 용감하게 간장을 쭉 짜서 그걸 지켜보던 사람들이 아주 당황할 정도였다. 총 3종류를 먹어보았는데, 신기한 건 다 맛이 달랐다. 어떤 건 좀 달고, 어떤 건 정말 너무 짜고, 어떤 건 새콤하고 그랬다. 태국 남부 간장도 먹어보고 너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Line Per Ink Studio에 다녀와 보니 “태국에서 가장 멋진 디자인스튜디오 중 하나를 방문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이었지만 실력 있는 디자이너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멋진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곳을 추천해 주신 성일님께도 너무 감사하고 메일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나도 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물론 전혀 일면식도 없는 일반인인 나를 초대해 주고 스튜디오 작업물과 인쇄 공정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준 ‘Bogie’와 ‘Stang’, 그리고 다른 디자이너분들 너무 감사하다. 다음에 Line Per Ink Studio 팀이 일러스트페어나 아트북페어에 참여하게 된다면 꼭 한번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 그땐 또 어떤 멋진 작품이 나올지 벌써 궁금하다.




Line Per Ink Studio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lineperink.studio?igsh=cnJ5bnYxOHRiN3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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