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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쏠이 Dec 06. 2023

4분, 여행을 담기 충분한 시간

수요 글쓰기 모임 | 주제: 음악

어떤 노래는 전주만 들어도 이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추억이나 기억이 떠오른다. 때로는 그때 느꼈던 감각까지 고스란히 전달 된다. 이런 이유로 여행할 때 한두 곡의 노래만 계속 듣곤 한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때의 추억에 빠져들 수 있게 말이다. 물론 항상 좋은 추억만 쌓이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노래를 들으며 당시의 상황을 회고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2023년의 마지막 달, 유튜브뮤직에게서 어김없이 2023 요약이 도착했다. 내가 1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무엇인지, 어떤 장르, 어떤 가수의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는지, 1년에 몇 시간이나 노래를 들었고, 몇 곡이나 들었는지를 상세하게 요약해서 보여준다. 1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을 보니 이 노래와 연관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Lil Tan’이라는 태국 가수의 노래다. 그냥 ‘태국 가수의 노래다.’라고만 하는 이유는 제목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인데, 제목도 가사도 모르는 노래를 사랑하게 된 이유에는 역시 여행이 있다. 23년 4월, 회사 생활은 점점 싫어지고 정말 이 길이 맞나 계속 고민하고 있던 나는 돌연 방콕행을 결심했다. 23년 2월부터 Layer라는 동남아시아 문화 교류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이걸 통해 알게 된 방콕에 사는 멋진 언니를 직접 만나고 싶어서였다. 이 언니가 나에게 해답을 줄 거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이분이 있는 방콕에 다녀오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어린이날 연휴를 끼고 휴가를 쓰면 4박 5일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23년 5월 같은 회사 다니던 친구와 함께 방콕에 갔다. 이 친구도 참 신기한 게 Layer 모임을 통 알게 된 후 운명처럼 같은 회사 동료가 됐다. 지금은 퇴사한 전 직장에서 얻은 귀인 중 한 명이다.

꽤 충동적으로 결정한 방콕 여행이었기에 계획이라 할 게 없었다. 원래 계획 없이 여행하긴 하지만, 이때는 더 없었다. 나의 가장 중요한 일정은 방콕에 사는 모임장 언니를 만나는 것이었기에 나머지 시간은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 하고 그날 아침에 찾아본 장소를 가보는 게 다였다. 조식을 먹고 방에 돌아온 후, 수영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밤에 돌아온 숙소가 고요할 때, 우리는 태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Royal Doctor’라는 드라마를 내내 틀어 두었다. 현대에 살던 여의사가 어쩌다가 과거로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인데, 여기서 과거란 한국의 조선시대 급 과거다. 드라마의 내용은 전혀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드라마 오프닝 곡은 꽤 마음에 들었다. 이 노래가 오프닝으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변주되어 드라마 중간중간에 나오는데 들을수록 좋아졌다. 구글에 ‘Royal Doctor OST’를 검색해 노래를 찾아서 내 재생목록에 담아두었다. 발전한 현대 기술 덕에 제목 하나 읽을 수 없는 노래도 쉽게 찾을 수 있다니, 감격적이다. 아무튼 이 노래는 내가 태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꾸준히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되었다. 현실이 답답하고 힘들 때, 이 노래를 들으면 방콕에서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좀 나아졌다. 도대체 얼마나 답답한 일이 많았으면 이 노래가 1위를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충동적으로 결정한 방콕 여행이었음에도 좋은 기억을 많이 쌓고 왔구나, “가길 잘했다.“ 싶은 생각도 든다.

4분 남짓한 노래 한 곡에 나의 23년 5월 4박 5일방콕 여행이 담겨 있다. 2주 뒤면 방콕에 다시 간다. 이번에는 퇴사도 했겠다, 1달 정도 간다. 이번에는 어떤 노래에 내 여행이 담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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