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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Jul 07. 2020

아내와 날달걀

저녁 식사로 전주콩나물국밥을 만들었다. 콩나물국밥 앞에 '전주'라는 단어를 붙인 건 내가 전주 태생이거나 주방장에게 비법을 전수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순전히 달걀을 넣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이 국밥을 맛보았을 때, 난 그릇에 따로 담겨 나온 날달걀 두 개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어설프게 따라 했는데, 덜 익은 노른자가 국물에 섞이며 묘한 맛을 주는 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나중에는 국밥을 일부만 떠서 달걀이 담겨 있는 그릇에 섞어 먹기도 했고, 달걀을 국밥에 부은 뒤 달걀이 어느 정도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달걀만 따로 먹어 보기도 했다. 여러 방법을 시도했는데, 노른자를 터트려서 비벼 먹는 것보단 못했다.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난 전주비빔밥보다는 전주콩나물국밥을 훨씬 더 좋아하여 아내와 함께 전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도 전주비빔밥 대신 전주콩나물국밥을 소개해 주었다. 아내는 이미 먹어본 적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전통 가게에서 먹어본 건 아닌 듯했다. 전주콩나물국밥을 주문했는데 날달걀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제대로 된 집을 소개해 주겠다며 전주의 한 골목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그런데 정확한 위치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자주 찾던  전주콩나물국밥집에 가보려 했는데 기억이 드문드문했다. 인근에 가면 얼핏 그 가게가 떠오를까 했지만 수십 년 세월에 바뀐 게 적지 않았다. 하릴없이 아무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그 가게도 여느 전주콩나물국밥집처럼 달걀이 따로 나왔다. 난 이런 건 처음 보지 않느냐는 듯 괜스레 야단을 떨며 달걀을 깨서 국밥 안에 넣어 먹으라고 일러주었다. 시범을 보일 양으로 내가 먼저 노른자를 터트려 국밥에 비볐다. 아내는 내가 하는 모양새를 가만히 지켜보더니 말했다.

"난 날달걀 싫어하는데."

난 예상치 못한 말에 깜짝 놀라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럼 달걀을 넣지 말고 국밥만 먹으라고 권유했다. 아내의 달걀은 내 차지가 되었다. 아내는 달걀이 없는 국밥을 덤덤히 맛보았고 난 속으로 아, 저러면 전주콩나물국밥이 아닌데, 하고 되뇌었다.

지금도 아내는 날달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주콩나물국밥을 만들 때면 달걀을 일찍 풀어 뚝배기 뚜껑을 닫아 놓는다. 아내가 뚜껑을 열 때쯤이면 달걀이 어느 정도 익어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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