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순례를 마치며 남은 기념품이라는 이름의 기억
순례를 마친 뒤, 산티아고에서 기념품으로 다시 가방을 채웠다. 이제 그 길은 나만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길 위의 시간은 끝났지만, 그때의 감각들은 이렇게 일상 속에 조용히 남아 있다.
순례가 끝난 뒤 돌아온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리듬, 익숙한 하루들. 이른 새벽부터 길을 걷는 일이 너무나도 당연했던 시간은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렸다.
요즘은 부르고스에서 이고 지고 온 머그컵에 커피 한 잔을 담아 하루를 시작한다. 현관 앞에 매달아 둔 가리비 껍데기와 작은 십자가 목걸이는 오고 가는 순간마다 길 위의 시간을 잠깐이나마 떠올리게 한다.
Souvenir. 프랑스어로 ‘기억’ 혹은 ‘추억’을 뜻하는 동시에 ‘기념품’을 의미하는 단어다. 한국어의 ‘기념품’이라는 말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이 단어 안에 함께 담겨 있었다. 그저 여행지에서 사 오는 물건 정도로만 느껴졌던 것이 조금 새롭게 다가왔다. 물건이라기보다 기억에 가까운 것. 어쩌면 우리는 물건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의 한 조각을 조심스럽게 집으로 데려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기념품 가게에 들른다. 그 물건들이 특별해서라기보다, 그 순간의 공기와 마음을 잠시 붙잡아 두고 싶어서.
길 위에서 매일 사용하던 작은 소품들은 이제 기념품이 되었다. 그 물건들을 다시 사용할 때마다 사소한 장면들이 문득 나를 다시 그 길 위로 데려다 놓는다. 길 위에서 느꼈던 공기와 걸음의 리듬,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던 나의 시간을 다시 불러온다.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어떤 감각들은 조용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길 위에서 배운 느린 호흡과, 이유 없이 스쳐 지나가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
삶은 여전히 복잡하고 나는 여전히 흔들리겠지만, 이미 알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산티아고까지 향하는 제 여정에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걸음 하나하나, 마주한 순간들이 글로 남겨지며 저에게도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제 시선은 일본 교토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경험한 새로운 일상과 사람들, 그리고 철없던 20대의 시간들을 다시 기록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