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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씨 May 10. 2020

K장녀들에게 바칩니다

“엄마 대신 네가 가줘야겠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병원 방문이 철저히 제한되었고, 아빠의 수술에는 보호자가 필요했다. 보호자는 입원 병실에서 함께 머무를 수 없기 때문에 꼭 필요한 순간 (수술 시간)에만 잠시 옆에 있을 수 있었다. 아빠의 수술은 수요일 아침 7시, 대전에 있는 엄마는 서울에 있는 딸에게 부탁했다. 엄마 대신 아빠 보호자로 옆에 있어 달라고.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휴가를 냈다. 당연하지. 내가 가야지.라는 생각의 흐름은 빠르고 단호했다. 근데 잠깐만, 우리에겐 엄마 아들도 있는데. 아, 그 아들 일주일 전에 여행 갔지. 아빠 수술이 있는 걸 알면서도 여행을 결심한 동생의 생각도 빠르고 단호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동생이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 반년 만에 살이 무섭게 빠진 동생을 보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 아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누나인 나는 대체 뭘 한 건가. 제발 신경 좀 쓰지 말라고 하는 동생을 뒤로하고 끈질기게 그를 신경 썼다. 비슷한 증상이 있었던 친구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병원을 물어보고, 연락하지 말라는 동생에게 계속 안부를 묻는.

 

“너 때문에 아픈 거 아니잖아.”

 

동생 걱정을 하느라 거의 일 년을 미쳐있는 나에게 친구는 말했다. 숨이 턱 막혔다. 왜 나는 동생이 아픈 게 당연히 내 탓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왜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이 말을 듣고 27년 만에 동생과 나의 관계에서 분리라는 것을 시작했다.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고, 동생은 내 도움 없이도 알아서 잘 회복해냈다.  

 

왜 나는 이렇게 가족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걸까. 왜 스스로 큰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걸까.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장녀가 같은 부담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암묵적으로 강요받은 순간들이 꽤 많이 쌓여있다는 것도. 어떻게 하면 이 유교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그들을 위한 영상을 기획했다.

 

“이런 질문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똑같이 듣고 살았을 줄 몰랐어.”


영상 속에서 출연자들은 ‘동생 밥은 네가 차려줘라, 우리 딸은 혼자서도 잘하지? 엄마 아빠가 큰딸이니까 얘기하는 거야’ 등 평생을 들어온 질문을 듣고 함께 반박했다. 아니! 나는 혼자서 잘할 수 있는 사람 아니라고. 밥은 배고픈 사람이 직접 차려서 먹으면 된다고. 집안의 모든 일을 알고 싶지 않다고. 이런 말들이 모여서 본인의 삶에 무거운 영향을 끼쳤다고.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혹시 장녀가 있다면 우리 이제 좀 내려놓자고. 그 무엇도 당연한 건 없으니 자책하지 말고 나를 먼저 챙겨보자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나에게도..) 이 영상의 베댓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크레이지 아시안 걸 중에 제일 크레이지는 장녀야.. 그들을 건드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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