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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Apr 17. 2024

남편과의 센트럴 파크 산책_240416

미국생활 243일 차



남편과 산부인과 입체 초음파 진료를 다녀왔다. 오늘 진료는 오래 걸리기도 해서 평소대로 혼자 갈까 하다가, 남편도 가끔은 같이 가는 게 좋겠다 싶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리고 역시나 남편은 지겨워했다 ㅎㅎ 진료 시간이 10분이 넘어가자 간간히 진료에 사용되는 모르는 단어를 핸드폰으로 검색하는 것 같았다. 자기 나름대로 ‘이런 걸로 핸드폰 하는 건 괜찮겠지, 영어 공부라도 하자’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나마도 곧 직원에게 저지당했다. 핸드폰 전파가 의료 장비 작동에 방해가 된다는 것 같았다. ㅋㅋ


이 와중에 애는 남편 판박이… 남편의 특징이 그대로 있다


산부인과를 나와서는 남편이 운동화 사는 데 따라갔다가,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다 집에 왔다. 맨해튼은 건물이 높아 햇빛이 좋아도 땅까지 햇빛이 닿는 일이 잘 없는데, 센트럴 파크는 햇살이 가득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공간에서 내내 투닥거렸다. ㅋㅋ


신난 남편, 짠돌이 남편이 놀랍게도 두 켤레나 사는 선택을 했다. 우리 부모님이 돈을 주시긴 했지만 그래도 남편의 선택이라기엔 놀랍다.


원래는 날씨가 좋아서 푸드코트에서 뭘 사다가 센트럴 파크서 먹을까 했다. 하지만 남편은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요즘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해서 남편은 적지 않게 압박을 받고 있다. 뭐 얘기만 하면 환율 얘기다. 남편을 흘겨보긴 했지만, 나도 내심은 수긍하고 포기했다.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는데 여기는 물건 값에 세금도 따로 붙으니, 이제는 원화로 계산해 보려면 달러에 1500원은 곱해야 한다. 설마 내리겠지 하는 생각으로 늘 조금씩만 환전해서 쓰다 보니, 실제 보다 더 쪼들리는 느낌이다. 이게 뉴노멀이 된다는 전망이 많다던데 무섭다.


저 뒤 동상 앞에선 거리 공연 중이다 ㅎㅎ


그리고 역시나 남편은 길었던 진료 얘기를 했다. 내가 초음파 진료를 보는 동안 옆에 앉아서 ‘이게 무슨 시간 낭비인가…’ 생각하다가, 어디서 본 인터뷰 내용이 생각났단다. 스티븐 호킹의 인터뷰 내용이었는데, 누군가 그의 행복의 비결을 묻자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한 날들을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 고 했단다. 기대가 없으면 행복하다고. 입체 초음파 진료에 안 따라왔어도 뭐 특별한 걸 했겠나 생각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그러더니, 나한테도 자기에 대한 기대를 버리란다. 음? ㅎㅎ


… 아니 ㅋㅋㅋ 뭐 다 맞는 말이긴 한데, 괜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리가 지끈 거린다고 했더니 ‘딸내미도 할 말 없으면 머리 아프다고 해’라고 받아친다. ㅋㅋㅋ 뭐 남편이 이렇게 솔직하니까 나도 솔직하게 편하게 결혼생활 하는 건가 싶긴 하다.


투닥거려도 기념샷은 찍는다 ㅋㅋ


푸드 코트 점심 한 번 먹는 것도 남편 눈치 보고, 남편이 대놓고 산부인과 진료가 지겨웠다고 하는데도, 어느 포인트에서는 모두 수긍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나눈 센트럴 파크 산책도 좋았다. 참내. ㅎㅎ 이러니 10년째 같이 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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