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252일 차
오늘은 마지막 오프라인 수업이 있었다. 남은 학기는 모두 교내 시위로 인해 온라인이 되었고, 여름학기는 온라인 수업만 있으니. 오늘 수업도 온라인 옵션이 있었지만, 이번 학기 중 가장 재밌게 들었던 수업이기도 했고 종강 기념 포틀럭 파티도 재밌을 것 같아 오프라인으로 참석했다.
수업에서 하는 포틀럭은 처음이었다. 음식 관련 수업이었고 에콰도르, 터키,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홍콩 등 워낙 다양한 국가의 학생들이 참여한 수업이라 어떤 음식들이 등장할지 궁금하면서도, 결국 모두 디저트로 수렴하는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도 멸치 견과류 주먹밥 같은 걸 해갈까 하다가 아이 봄방학에 치여 결국 냉동 바람떡을 사갔으니.
하지만 딱 그 중간이었다. 우선 밀렛 (수수) 연구에 매진하고 계신 교수님이 본인의 할머니께 물려받은 멋진 냄비에 수수 샐러드를 한 가득 해왔고, 한학기 내내 수수 얘기를 들은 홍콩 동기가 수수로 팬케이크를 구워왔다. 카자흐스탄 학생은 봄방학 때 가지고 왔다는 말고기 육포와 말고기 치즈를 내놓았고, 직접 베이킹을 해 온 사람들도 많았다. 워낙 초가공 식품의 안 좋은 점에 대해 배운 수업이라, 마트에서 사오더라도 마트에서 만들어 파는 샐러드나 치즈로만 만든 칩을 사오는 등 초가공 식품을 피해가려는 노력이 보였다. 나도 냉동 바람떡이지만 쌀과 쑥가루, 팥 앙금만 들어간 떡이었고 ㅎㅎ 오가닉 하드 사이다 (알코올이 함유된 과실 주스)나 알코올이 들어간 티를 가져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건 맛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파티 주최자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진 한국인으로써 포틀럭이 여전히 낯설긴 하지만, 피크닉 계절이 돌아온 만큼 좀 더 많은 포틀럭 피크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담없이 모임을 제안할 수 있고 음식 구성이 예상이 안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흥미롭다! (물론 미국에서도 누군가의 집에 초대 받는 경우에는 포틀럭 보다는 주인이 대부분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더더욱 포틀럭 피크닉!)
장소도 오늘 한큐에 정했다. 거버너스 아일랜드. 오후 수업에서는 수업 대신 거버너스 아일랜드로 필드 트립을 갔는데, 피크닉 장소로 완벽했다. 맨하탄 밑에 있는 섬이라 페리를 타야했지만 그래봤자 한시간도 안 걸려서 갈 수 있고, 무엇보다 경치가 정말 좋았다. 맨해튼과 브루클린 브릿지, 자유의 여신상을 한 번에 감상할 수도 있었고, 넓은 잔디밭에 놀이터에 자전거 렌탈 등 아이와 놀 수 있는 곳도 많았다.
여길 왜 지금 알았나 모르겠다. 한 동기가 여기 피크닉으로 많이 와봤다고 하길래, 다음에 꼭 같이 피크닉을 오자고 약속했다. 임신만 안했어도 화이트 와인이나 맥주 들고 오는 건데 ㅎㅎ 피크닉 팁을 얻어서 가족들이랑도 또 와야겠다.
필드트립 자체도 재밌었다. 이 곳은 기후 관련 기획이 많이 되고 있는 곳인데, 기후 담당자가 직접 나와 섬을 소개해줬다. 원래는 군대가 주둔했어서 거버너스 아이랜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군대가 철수하고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다고 한다. 섬을 넓히고 공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기후 변화를 염두에 두고 지대를 높였으며, 기후 관련 교육/ 리서치/ 콜라보 허브로 기획하고 있는 Climate Exchange라는 장소도 건축 중에 있고, 과거에 썼지만 지금은 버려진 건물들을 아티스트들에게 오픈하고 기후 관련 작품들을 만들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물리적으로 보이는 곳이어서 좋았다.
필드트립 직전에 잠시 한 교수님과 면담도 했다. 여름에 프로젝트나 인턴십을 해야하는데, 한 교수님께 혹시 Research Assistant(RA) 자리를 문의한 상태였다. 두어달 전 부터 미리 운은 띄워놨지만, 그 사이에 이미 RA를 해왔던 학생과 연장을 한 걸 알고 있어서 크게 기대는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Paid RA 포지션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Unpaid로 일을 시키진 않는다고.
Unpaid라도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여름은 좀 쉬엄쉬엄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Paid면 가장 좋았겠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걸 잘 알고 있다고. 그랬더니 자기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프로젝트 (국제 기구 관련) 은 아니었지만, 이게 아니면 해야하는 프로젝트 (회사에서 하는 일과 비슷한 일) 보다는 괜찮을 것 같았다. 내 시간도 훨씬 자유롭게 쓸 수 있고. 결정하기 전에 조금 고민은 됐지만 남편이 지금 내가 쥔 패 중에서 뭐가 더 나을지만 생각하면 된다고 현명한 조언을 주어서 잘 결정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하게 될지는 교수가 정하겠지만, 여름학기를 어떻게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마음 불편하지 않은 틀 안에서 (특별히 인턴이나 relocate하는 프로젝트를 하지 않고) 시도를 해볼 수 있었어서 좋다.
진짜 오늘은 봄학기에서 여름학기로 넘어가는 느낌이 확 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