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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un 12. 2024

내 단점 체념하기 + MET 탐방_240611

미국생활 298일 차



내 가장 큰 단점은 늘 안절부절못한다는 점이다. 뭔가 계획할 때는 늘 최적화하려고 안절부절못하고, 실행을 할 때는 계획대로 진행 못할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예를 들어 요 며칠간은 에너지 수업 조모임 때문에 그랬다.


드롭하는 사람이 많아서 내가 들어간 조가 두 번이나 해체되고 계획하지 않은 분량을 계획하지 않은 시간에 해야 했다. 사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크게 손해 본 건 없다. 과제는 결국 제출했고, 수업은 이번 달에 끝날 거고, 혹시 수업에서 C를 맞는다고 졸업을 못하진 않을 거다. 그런데도 계속 이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짜증이 났다. 조는 대체 왜 아직 안 짜주나,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과제를 안 하나 이러다 또 드롭하는 건 아닌가, 하고.


회사 다닐 때는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심했다. 여기저기 걸친 이슈가 많으니, 그 수많은 이슈와 유관 부서들에서 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집에 와서 애를 재울 때도, 샤워를 할 때도 그 생각들이 났다. 안절부절못한다고 스트레스받는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지금 일이야 큰 스트레스는 아니었지만, 1년을 쉰 후에도 여유를 찾지 못하고 이러고 있다는 게 실망스러웠다. 남편한테 이런 나를 어쩌면 좋을까 물었다. (남편은 분리가 잘되는 사람이다.) 그랬더니 그랬다.


“체념해. 사람은 안 바뀌어.”


이런 성의 없는 대답이 있나 싶었지만, 얘기하다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해결책이 없을까 고민했었다. 집에 와서 회사 일 생각이 나면 필요한 건 메모로 기록해 놓고 지금에 집중하려고 한다던지, 간단한 건 생각날 때마다 빨리 해치워 버린다든지.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내 안절부절못함이나 스트레스는 더 심해지기만 했다.


차라리 그냥 나의 이런 모습을 인정하고, 그런 생각이 들면 “나 또 사소한 거에 안절부절못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하고 바라보고, “이러다 말겠지…” 하며 지켜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상하듯. 불교에서 마음 수련하듯. 사실 명상이라고 하면 그것 또한 내가 해야 하는 액션 아이템처럼 생각이 되곤 했다. 앞으로는 ‘체념하기’로 명명해야겠다. 어디 써서 붙여놔야겠다.



오늘은 남편과 데이트하기로 한 날이었다. 아이 방학하기 전 6월 한 달만이라도 매주 화요일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오늘의 데이트 장소는 MET(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조르주 쇠라의 그림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MET에 들어가자마자 몸의 상태가 이상했다. 눈앞이 깜깜하고 정신이 멍하고 어지럽더니, 나중에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시력이 심하게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어지러웠다.


드디어 인상주의관에 들어왔는데!


40분을 걸려서 왔는데 바로 돌아가자고 하기에는 미안해서 남편은 혼자 보라고 하고 잠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딱히 나아지는 기분이 없었다. 집에 가기는커녕 이 큰 MET에서 나갈 수는 있을까 걱정됐다. 20분 넘게 앉아있고, 화장실도 한번 다녀왔더니 정신이 슬슬 들었다. 내가 제 정신일 수 있다는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아마 어젯밤에 평소보다 적게 자고 아침도 적게 먹었는데 아이 학교 오픈 클래스룸까지 다녀와서 그런가 싶었다. 안 그래도 평소에도 배가 고프거나 당 떨어지면 엄청 힘든데, 그게 심해진 것 같았다. 앞으로 단 거 잘 챙겨 다녀야지… 정신을 차리고 나선 혼자 보란다고 혼자 잘보고 다니던 남편을 찾아서 다시 같이 보기 시작했다.



MET은 좋았다. 주목적이었던 쇠라의 그림은 많지 않았고, 풍경화가 아닌 사람 그림을 보니 너무 무미건조했다. 무슨 서커스 그림조차 차가워 보였다. 조용하고 과학자 같은 성격이었다는 기록이 있다던데, 요즘 표현으로 하면 쇠라는 쌉T(극단적인 이성인)였을 것 같다. 똑같이 쌉T인 남편은 마음에 든다고 했다. ㅋㅋ


서커스 그림…?


이슬람 쪽에도 갔는데, 상아나 나무 조각을 아름답게 깍아 만든 창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보기만해도 내 목 어깨가 나가는 느낌이 들어 그걸 만든 장인들이 안타깝다가도,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곤 했다. 예전 터키나 우즈베키스탄 여행이 떠올랐다. 다시 이슬람 국가로 여행하고 싶다. 아시아 국가나 ㅎㅎ 당분간은 어림도 없을테니 아쉬운대로 MET에서 이슬람관, 아시아관 탐방이나 해야겠다. (아쉬운대로 MET 탐방이나 해야겠다니 말하고 보니 호화롭다.)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경비원입니다’에서 이 곳은 미술관이라기보다 박물관이라고 했는데, 봐도봐도 끝없는 작품들은 보면 정말 그렇다.



나무를 조각해 만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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