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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의 생각을 알기 전까지 아무도 먼저 이야기하지 않죠. 미어캣처럼 모두 한쪽만 쳐다봅니다."
"임원들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고 확신하는 것 같아요. 대화나 설득이 잘 안 되고요. 그러면 결국 '네, 알겠습니다' 하고 마무리 짓는 게 현명한 방법이 되는 거죠."
어느 대기업 임원과 팀장의 하소연이다.
할 말은 많지만 입을 꾹 다물었던 장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경험이다. 최근 필자가 속한 연구팀이 직장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이유를 물어본 결과 '동료들과 갈등을 만들기 싫어서' '다른 의견을 내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그 일이 내 일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상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라는 의견도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거나 더 나은 대안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침묵을 택했다고 했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의 엘리자베스 모리슨과 프랜시스 밀리컨은 이런 현상을 '조직 내 침묵'이라 정의하고, 몇 가지 원인을 지적했다.
첫째, 리더는 구성원에게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을 불편해하고, 그 결과 부정적인 피드백을 피하거나 무시하려 하며, 심지어 피드백을 준 구성원을 공격하고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가장 잘 안다, 내 생각이 옳다'는 리더의 믿음 때문이다. 물론 리더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가졌고,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구성원을 불신하게 된다.
셋째, 반대 의견이나 다양한 관점을 어수선하고 조직이 '잘 돌아가지 않는' 신호로 여긴 나머지 이견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 같은 조직을 원하기 때문이다. 넷째, 리더의 경험이 동질적일수록 또 함께한 기간이 길수록 응집력과 공유된 믿음이 더욱 확고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상황에서 '튀는 의견'은 존재하기 어렵다. "침묵을 지켜서 해고된 사람은 없어도, 괜히 나섰다 상사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 연말에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거든요." 어느 대기업 임원의 이야기다.
이렇듯 문제 제기와 침묵 사이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이유를 에이미 에드먼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문제 제기는 주로 조직이 혜택을 보고 개인의 혜택은 보장되지 않지만 침묵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즉각적이고 확실한 혜택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마셜 골드스미스는 "크든 작든 모든 선택은 '위험 대 보상'의 결정이고 여기에서 갖게 되는 가장 자연스러운 생각은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침묵이 위험보다 보상이 큰 결정인 셈이다.
심리학자가 볼 때 이런 선택은 본능에 가깝다. 생존본능이 강하게 발동하면 그간 우리가 배워온 도덕적 규범이나 당위 목소리는 사라진다.
상사의 심기 건드리느니
침묵 지키면 최소한 본전
"네 알겠습니다" 하는게 현명
이런 조직 큰 실패는 없지만
회사 상황 직시하지 못하고
창의적인 변신도 불가능해
"내 생각이 항상 옳진 않다"
CEO가 먼저 귀를 열어야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자기 의견에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거나 심지어 인간관계마저 소원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침묵을 선택하게 만든다. 또 자신의 의견이 번번이 묵살당하는 경험을 하다 보면 입을 닫은 채 윗사람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 결국 구성원은 방관자가 되어 문제 자체를 외면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새로운 시도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면서 일과 조직에 대한 만족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능력은 쇠퇴한다.
하지만 침묵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직 입장에서는 고객, 상품, 서비스 등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발견해 개선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또 구성원의 참신한 생각과 의견이 사장되면서 큰 실패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창의적인 성공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확대될수록, 또 창의력과 혁신이 요구되는 조직일수록 리더는 모두가 자신의 입을 바라보고, 자신의 말에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 '순종적이고 착실한 직원들'만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장이 됐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사는 건 아닙니다. 그건 계속 억제를 해야 하는 거죠. '이거 좋네' 소리를 함부로 못해요.그러면 실행계획을 짜버리거든요."
모 금융기관에 새로 부임한 최고경영자(CEO)의 이야기다. 지난 사정을 알고 보니 전임 CEO가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독재적인 경영자였기에 회의 때마다 직원들은 CEO의 말을 받아 적고 즉각 실행하는 문화에 익숙해 있었던 탓이었다.
또 다른 대기업 CEO는 이미 결정된 사항을 확인하고 발표하는 임원회의 방식을 보며 '회의'가 아니라 '보고대회'라고 명칭을 바꾸라고 했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치밀한 논리와 치열한 토론이 사라진 모습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
때로는 속이 터질 듯 답답하겠지만 리더는 지위에 관계없이 구성원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갖는 것을 환영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양한 의견이 교환되면서 조직의 상황을 직시하게 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장면이 벌어지기는 쉽지 않다.
"평가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친해질 수 없습니다. 그게 조직 내 관계의 본질입니다." 어느 대기업 팀장의 이야기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리더는 조직 내 다양성 수준을 높이기 위해 분위기를 더 분명하게 조성해줘야 한다.
리더가 마치 모든 정답을 안다는 듯이 군림하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자기 생각을 편하게 드러낼 수 없다. 그래서 조직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리더일수록 자기 생각이 언제나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상대방의 생각과 내 생각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겸양의 태도가 필요하다. "강력한 힘은 유사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차이에서 나온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으로 잘 알려진 스티븐 코비 박사의 이야기다.
당신이 몸담은 조직은 어떠한가? CEO, 임원, 팀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비교적 편안하게 표현하는가? 아니면 질책당하고, 나쁜 평가를 받을까봐 할 말은 많지만 침묵을 지키는가? 동시에 나와 함께 일하는 구성원은 어떤 경험을 하고 있을지 돌아볼 시간이다.
이 글은 저자가 매일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건의해봐야 찍혀요"… 회사 망치는 할많하않 [트라이씨 기업심리학] - 매일경제 (mk.co.k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