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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 Jan 31. 2023

연애의 끝은 결혼이 맞아..?

그냥 연애일 순 없는 걸까

      

 최근에 알게 된 한 무리의 청년들과 만났던 날이었다. 그들이 자주 간다는 분위기 좋은 바에 함께 앉아 위스키 하이볼을 홀짝이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인데도 내부는 한산했다. 근황을 묻고 답하며 꺄르르 웃던 청년 하나가 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언니, 근데 애기는 뭐 하고 있어요?"      


 "응? 지금 자고 있어. 열 신데, 자야지."      


 "집에 애기 혼자 있어요?"      


 "남자친구랑 같이 있지."     

 

 "아, 방금 태워다 주고 간 그 사람이 남자친구에요?"      


 "맞아."      


 이내 다섯 청년의 눈길이 나에게로 쏠렸다. 방금 말 걸었던 청년 옆에 있던 다른 이가 이어 질문했다.   

   

 "언니, 근데 남자친구랑 결혼은 언제 할 거에요?"  

    

 "맞아, 맞아, 나도 궁금했어요!"      


 "부모님들은 뭐래요?"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아득해지기도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상대 쪽 부모님들은 나에 대해 모르셔. 그리고 결혼은 안 할 거야."      


 "네에? 왜요!"      


 이십 대 중반의 에너지 넘치는 청년들이라 그런지 놀라는 목소리도 우렁찼다. 저들끼리 수다 떨 땐 저 멀리서 지저귀는 새소리 같더니, 내 한마디에 영역다툼을 하는 까마귀 떼처럼 시끌시끌해졌다. 나는 한산한 술집 내부를 눈으로 한 번 훑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그야... 나는 비혼주의자니까?"      


 내게는 이제 익숙해진 비혼주의 선언에, 눈을 빛낸 청년들이 저들끼리 토론을 시작했다. 자신도 연애 7년 차이지만 비혼주의라 하는 자도 있었고, 결혼을 하고 싶지만 여지껏 모솔이라며 울상 짓는 자도 있었다. 한 청년이 '근데 왜 비혼주의가 되었어요?'라고 물었다가 옆에 앉은 이에게 '왜 결혼하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왜 비혼주의냐고 묻지 않는 게 예의야.'라며 한 소리 듣기도 했다. 나는 격하게 혼내는 그녀를 말리며 말했다.      


 "질문하는 건 괜찮아. 궁금할 수도 있지.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싫어서 그래."      


 또다시 쏟아지는 눈빛들을 느끼며 아까 결혼하고 싶다 말했던 청년을 향해 물었다.      


 "너는 왜 결혼이 하고 싶은데?"      


 질문하기 무섭게 큰 소리로 답이 돌아왔다.     


 "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거든요!"      


 "안정된 생활?"      


 "음... 그냥 남편도 있으면 좋겠고, 아이도 키우고 싶어요. 평일엔 돈 벌고, 아이 키우고, 주말엔 같이 놀러 다니고... 그런 안정된 생활요."      


 "그래? 지금 생활은 어떤데?"      


 "지금은 무료하죠. 퇴근하고 뻗어서 잠들기 바쁘고, 주말엔 집에서 넷플릭스나 보다가, 다시 월요일 되면 출근하고..."      


 나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열심히 대답하는 청년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지금 생활이 무척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데?"      


 "엇...?"      


 불도저처럼 망설임 없이 대답하던 청년이 멈칫했다.      


 "무료하다는 건 그만큼 안정되어 있다는 거야. 결혼하게 되면 이 모든 게 다 깨질걸? 이십 평생 남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가족이 되어 같이 살게 되는 거잖아. 엄청난 변화지."      


 나는 멍하니 나를 응시하는 그녀에게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애할 때야 가끔 만나 시간을 보내는 정도이니 괜찮지만,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건 여러 면에서 다툼을 유발하기 쉽다는 것. 밥 먹고 설거지를 곧바로 할지, 저녁때 모아서 할지를 두고 싸우는 정도는 양반이고, 어떤 커플은 치약 짜는 순서로도 개싸움을 한다는 것.     


 연애하면서 한번 쓴 수건을 바로 빨아야 할지, 두세 번 쓰고서야 빨아야 할지로 다투는 커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사소하고 별것도 아닌 삶의 습관들이 기폭제로 작용한다. 한평생 익숙해져 살아온 삶의 방식들이 모조리 흔들리는 것이다. 양쪽 모두가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에게 온전히 맞추려는 마음을 내야만 한다. ‘니 말이 맞아’로 시작해서 ‘니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로 끝나는 삶, 그것이 현실의 결혼생활이다.     


 삶의 결이 비슷한 상대와 결혼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으로, 수많은 다툼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의 문제가 남는다. 나의 가족과, 상대의 가족이 만나 하나의 새로운 가족이 되는 게 결혼이니까. 부부의 금슬이 아무리 좋대도, 그들의 "예전 가족" 멤버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괜히 '시월드'니 '처가월드'니 하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전생에 나라를 구한 정도의 공을 세워, 삶의 결이 비슷한 남편을 만난 데다 '시월드'나 '처가월드'의 스트레스 없이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한다면 그걸로 해피엔딩일까? 가장 큰 문제를 간과해선 안 된다. 바로 '출산과 육아'다. 이 거대한 ‘변화’는 생각지도 못했던 ‘건강’ 문제를 안겨준다. 나만 해도 임신 중 호르몬의 이상으로 꾸준히 갑상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고, 추가적으로 방광염, 햇빛알레르기를 얻었다. 지인이 출산 중에 사망한 경우도 있었고, 태아가 사망한 지인의 병문안을 간 적도 있다. 출산과 육아야 말로 어마어마한 변수 그 자체인 것이다.      


 “결혼은 ‘안정된 생활’과 완전히 반대에 있는 개념이지. 기존의 삶을 완전히 버리고,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해. 남편에 남편의 가족들까지 생기잖아. 게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의 몸에 여러 변화가 생기고, 또 육아는 어때? 어떻게 키울지 나도 모르는데, 남편도 몰라. 허둥대다 보면 다툴 일도 많이 생기지.”     


 그제야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청년이 말했다.     


 “맞아요 언니, 우리 부모님도 얼마나 싸우는지. 좀 전에도 싸우는 거 보다가 나왔다니까요.”     


 청년의 말에 모두가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부모님은 이미 이혼했는데, 싸우는 꼴 안 보고 사니까 편해요.”     


 “차라리 이혼하면 좋겠다 싶어. 나이가 저만큼 들어도 싸우는 부부라니.”     


 “우리 집만 그런 줄 알았는데... 부모님 금슬이 좋은 그런 집은 없어?”     


 모두가 한 마디씩 보태며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나 자신이나 주변의 결혼한 부부에 빗대 한 설명들을, 청년들은 제 부모에 대입하여 이야기했다. 그러다 제일 처음 질문했던 청년이 말했다.     


 “언니도 남자친구랑 싸워요?”     


 “아직 싸운 적은 없어.”     


 “근데 왜 결혼 안 해요?”     


 “그냥. 나는 결혼이라는 거 자체가 싫다니까. 남자친구도 좋고, 같이 육아하며 싸운 적도 없고, 모든 게 완벽해. 지금 순간이 완벽한데 굳이 결혼이라는 변수를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     


 연애를 7년이나 했다는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언니, 저도 지금이 좋아요. 예전엔 연애의 끝이 결혼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연애의 끝이 연애일 순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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