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달고 씁쓰레한 냉이 된장국,

이제는 달디 단 냉이에 대한 예찬

by Sunyeon 선연


내게 나물이란, 곧 어머니와 맞닿은 무엇이었다. 봄의 나물이 향긋하거나 다채롭다는 것을 엄마의 저녁 식탁에서 가장 먼저 배웠기 때문이다.

명절 때면 으레 직접 손질한 수많은 가지의 나물들이 제사상에 올랐고, 평소에도 ‘나물’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덕에 나의 어린 시절 도시락 통에서 나물 반찬을 발견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소시지, 계란말이 등의 빛나는 반찬들 사이에서 나물반찬은 늘 인기가 없었고, 돌아가는 길 집 뒤 공원에서 남은 나물 반찬을 늘 싹싹 비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남은 도시락의 잔반이 어머니를 슬프게 만들 것만 같아서. 그렇게 남은 반찬을 목 뒤로 씹어 넘길 때면 씁쓸한 단맛이 길게, 오래 퍼졌다.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놓았다, 방과 후 어느 오후의 조각은 그렇게 흘렀다.


봄이 되면 식탁엔 늘 냉이 된장국이 올랐다. 냉이를 손질하시는 엄마의 손길이 분주했다.

“향이 참 좋지 않니?” 물으시는 엄마에게 늘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릴 때의 나는 냉이 된장국이 썩 기껍지가 않았다.

향긋한 듯 쓴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나물. 냉이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물로 늘 내게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그 사실은 유년기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름은 예쁜데 왜 이렇게 쓴 거야?‘


봄마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냉이는 친해질 법도 한데, 친해지기 어려운 깐깐한 친구 같았다. 마치 내가 어려워하는 수학 같기도 했다. 그렇게 자란 내가 냉이 된장국을 ‘잘 여문 맛’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이십 대 중반이 지난 이후였다.

어느 봄, 어머니가 올리신 냉이 된장국을 먹는데, 뿌리 부분이 달큼하면서 야무진 맛이 느껴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에는 알았지만 못 느꼈던 감각이었다. 분명 몰랐던 것이 아닌데 묘하게 향긋함도 느껴졌다. 어느 봄날 저녁, 나는 처음으로 냉이 된장국 한 그릇을 깨끗하게 싹 싹 비웠다.

정말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냉이는 눈이 채 녹기도 전인 이른 봄,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미는 식물 중 하나다. '나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드립니다'는 꽃말은 겨울을 버티고 올라온 그 에너지를 누구에게든 내어주는 냉이에게 참 잘 어울린다. 수십 년을 냉이가 어떤 식물인지 관심도 갖지 않고 살다가, 삼십 대를 앞두고서야 냉이에 대한 깊은 뜻을 알았다. 이름에 숨겨진 뜻을 알고 나니 냉이가 가진 달콤 씁쓸한 맛이 삶의 굴곡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더욱 사랑스러워졌다.


냉이는 잎보다 뿌리에 향이 모여 있다고 한다. 흙속의 영양분을 온전히 머금고 있어서, 씹을 때 퍼지는 향은 단순히 풀 향이 아니라 깊고 진한 흙의 숨결과 닮아 있다. 달래만큼 맵지는 않지만, 특유의 알싸한 끝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톱니처럼 들쭉날쭉한 잎사귀, 그리고 그 끝에 달린 작고 하얀 꽃을 보며, 겨울 내내 굳어있던 몸과 마음을 깨워 줄 ‘냉이 된장국’을 기다리는 마음이 서서히 솟아났다. 짙은 초록색과 뽀얀 뿌리의 대비를 보며 나도 모르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듣는 나를 마주하게 되더라.


어린 시절의 내게 냉잇국은 그저 흙냄새 나는 쓴 국물이었지만, 이제는 그 쌉쌀한 끝맛에서 비로소 봄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독립을 한지 오래지만, 여전히 봄이 되면 이즈음 저녁 식탁에 소담스레 올라오던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냉이 된장국’이 떠오르곤 한다.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봄의 깊은 맛이, 삶의 굴곡 속에서도 앞으로 단단하게 나아가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나를 위로해 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