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존버하기] - 프롤로그
4차 산업, 그중에서도 '블록체인'
비단 IT 분야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용어다.
본래 정보를 블록 형태로 분산하여 저장하는 방법인 이 기술이 국내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7년 후반쯤이었다.
대표적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가격이 급등하며, 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주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변화의 폭이 크고 빨랐던 탓에 소위 대박 또는 쪽박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공연히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블록체인 기술 자체를 마치 암호화폐와 동일시 여기는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딱 이 시기에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디자이너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직한 회사에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입사하고 나서 외부에서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나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 아는 게 별로 없어서.
UI/ UX 디자이너로서 일정 수준의 기술 개념, 용어 등은 이해를 해야만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솔직히 여유가 없었다.
회사 내에서 워낙 갑작스럽게 ICO 프로젝트(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는 것)가 결정되었던 탓에, 일정을 맞추려면 당장 화면을 그려내야 했고, 에이전시에 뒤지지 않을 업무량을 구멍 내지 않도록 메꾸는데 급급했다.(이 부분에 대해선 앞으로 차차 설명할 예정이다.)
핑계 같지만 이런 이유로 겉으론 나름 4차 산업에 뛰어든 앞서가는 디자이너,
속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일을 쳐내기 시작했다.
그 후로 3년.(물론 그 사이에 이직을 한번 했지만)
여전히 나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다.
그 사이 카카오, 네이버가 각각 클레이튼과 링크라는 네트워크를 선보일 만큼 블록체인을 이용한 비즈니스가 활성화되었고, 정부 주도하에 노원 / 동백전과 같은 지역 코인이 발행될 만큼 블록체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블록체인 기반의 대중화된 킬러 서비스가 없는 까닭에 여전히 나는 비슷한 질문을 받곤 한다.
'블록체인 회사에서 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해요?'
'무슨 서비스 만드는데요?'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다행스럽게도 3년이 지난 현재의 나는 이 질문에 조금 구체적이고 길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글보다는 그림에 익숙한 내가 펜을 들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조금 풍월을 읊을 수 있게 된 것.
그래서 3년 전의 나처럼 누군가 갑자기 블록체인이라는 세계에 빠져서 정신없이 디자인을 쳐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자.
그리고 좀 더 버텨보라고. 함께 존버하자고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동안의 디자인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