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붓카케 우동
열아홉 살 때 나는 명동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우동 가게에서 일을 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곳에서 특히 좋아했던 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로 물을 끓이는 가마에서 나는 수증기다. 정확히 말하면 그 수증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모습이 좋았다. 가게 오픈과 동시에 커다란 가마에 물을 끓인다. 금세 하얀 수증기가 생기는데 그대로 두면 주방이 습해져서 일을 할 수가 없다. 밖이 아무리 추워도 내 키만 한 창문은 꼭 열어 뒀다.
겨울이 되고 비가 자주 내렸다. 손님이 없는 날엔 주방에 가만히 서서 수증기가 창문을 넘어 젖은 아스팔트 바닥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걸 꽤 오랫동안 지켜보곤 했다.
또 다른 하나는 냉붓카케 우동이다. 냉붓카케 우동이 출근의 원동력 까지는 아니었지만 퇴근 후 점심시간은 내심 기대가 됐다. 찬물에 헹궈 탱글한 면발 위에 짭짤하고 감칠맛 나는 소스를 끼얹고 온천 계란과 파를 올려 슥슥 비벼 먹었다. 반드시 노른자를 가르면서 아래 있는 면을 같이 건져야 했다. 고소한 노른자가 면이 아닌 다른 곳에 묻는 게 싫었다. 종일 찬물에 손을 담가서인지 퇴근 후 옷을 갈아입으면 양손이 후끈거렸다. 그럴 때 차가운 그릇을 만지면 열기 올랐던 손이 진정됐다. 찌르르-하고 간질거리는 기분도 썩 나쁘진 않았다.
마치 신선이 걸어 나올 것만 같던 그 수증기는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냉붓카케 우동은 집에서도 만들 수 있다. 시판 소스에 얼음과 냉수를 붓고 간만 맞추면 된다. 다만 매번 온천 달걀을 만들어야 했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니 이보다 귀찮은 것들이 더욱 많아져 이제는 일도 아니다. 물이 끓으면 불을 끄고 찬물 한 컵과 계란을 넣은 뒤 뚜껑을 닫고 12분을 기다린다. 그동안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모쪼록 다들 잘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