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들 때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음악은 나를 감싸주는 얇은 막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차가운 바람이 불어도, 그 안에서만큼은 따뜻하다. 그런 순간에 나는 종종 나 자신을 발견한다. 감정에 충실해지면서, 조금은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마주한다.
몇 달 전이었다. 지쳐 있었고, 마음이 어딘가 흐트러져 있었다. 사소한 일도 나를 쉽게 흔들었고, 깊은 생각을 피하기 위해 무언가에 몰두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피한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었다. 그날도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평소처럼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그날 흘러나온 곡은 오래전 좋아했던 음악이었다. 어느 순간 나와 멀어진 곡이었는데, 우연히 다시 들었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낯선 익숙함이 찾아왔다. 음악 속의 멜로디와 가사가 내 속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걷는 내내 노래와 함께 그날의 풍경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곡을 처음 들었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지금처럼 마음이 지쳐 있었고, 이 곡이 나를 잠시나마 위로해 줬었다. 멜로디 하나, 가사 한 줄이 당시의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걷는 내내 나는 그 기억과 지금의 나를 겹쳐보았다. 같은 음악인데도 그때와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음악은 참 묘하다. 귀로 듣는 것 같지만, 마음으로 스며든다. 멜로디는 나를 과거로 데려가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게 하기도 한다. 그날 걷던 길 위에서 나는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만약 세상의 모든 일이 영화처럼 BGM이 깔린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충실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고백의 순간에 따뜻한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면, 그 진심은 더 깊게 다가올 것이다. 이별의 순간에 쓸쓸한 첼로가 깔린다면, 감정을 외면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화창한 날씨 속의 산책에는 발랄한 기타 소리가, 빗속의 고독에는 낮은 음의 현악기가 흐른다면. 어쩌면 우리는 감정을 놓치지 않고 그 순간에 더 머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음악이 주는 힘은 바로 그거다. 삶의 평범한 순간에도 새로운 결을 만들어준다. 그날 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동안, 내 안의 무거운 감정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마음속에서 피하던 생각들이 선율을 따라 하나씩 풀어져 갔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온전히 나의 것이며, 그 누구도 대신 느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그때 더 또렷해졌다.
집에 돌아와 이어폰을 벗었을 때, 길 위의 소음이 다시 들려왔다.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대화, 신호등이 바뀌는 소리. 음악이 없는 현실은 어쩌면 조금 밋밋하고 덜 명확하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음악은 늘 함께할 수 없으니까, 오히려 그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들었던 오래된 곡은 지금도 내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있다. 그리고 가끔, 그 음악을 들으며 그날 걷던 길을 떠올린다. 힘들었던 나, 그럼에도 나를 버티게 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의 풍경들. 음악은 그런 식으로 나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연결해 준다.
음악이 깔린 세상은 없지만, 음악이 깔린 순간은 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우리는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