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단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by someformoflove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래서 제주 올레길을 걷는 동안 가장 기대되는 순간은 바다가 보이는 길을 지날 때였다. 파란 물결이 펼쳐지고, 짠내 나는 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새삼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올레길이 늘 바다와 함께하는 길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특히 바다가 아닌 길이 나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잘 걷다가도 “이게 무슨 산길이고, 이런 뻔한 길은 왜 포함된 거람” 하며 혼자 푸념을 늘어놓았다. 올레길에 대해 나름대로 기대가 컸던 만큼, 바다가 보이지 않는 순간에는 실망도 컸다. 심지어 그런 길을 걸을 때면 “굳이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들곤 했다.


산길이 많았던 11코스를 걸을 때는 푸념이 더 심해졌다. “이게 무슨 제주의 풍경이야?” 속으로 투덜거리며 걸었다. 걷는 내내 지금까지 감탄했던 제주도의 풍경은 새까맣게 잊은 채, 그 순간의 불만만을 곱씹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서 느꼈던 설렘도, 올레길을 걸으며 만났던 다양한 풍경도 순식간에 부정해 버린 채 말이다.


그러다 11코스를 마치는 지점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좋은 풍경도 제주도였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도 제주도였다. 제주를 온전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주가 내게 보여준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면들만 기억하며, 여행자의 눈에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은 외면했던 것이다.


그 순간, 나의 사랑도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사랑할 때 상대방의 예쁘고 좋은 모습만 보려고 애썼다. 그들의 웃음과 다정함, 설렘을 주는 순간들만 기억하려 했다. 그런데 안 좋은 모습이 보이는 순간, “아, 별로였잖아”라며 이전의 좋았던 감정마저 부정하곤 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가진 복잡한 모습,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사랑을 미성숙하게 소비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풍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아름다운 바다와 거친 산길이 모두 제주인 것처럼, 사람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좋은 날과 나쁜 날이 함께 공존한다. 그런데 나는 항상 사랑을 너무 단편적으로 봤다. 상대의 좋았던 모습을 기억하며 사랑했고, 그것이 조금이라도 깨지는 순간 사랑도 함께 끝나버린다고 여겼다.


이건 얼마나 미성숙한 사랑인가. 좋은 것만 보려 하고, 나쁜 것을 외면하는 태도는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인 기대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항상 실망으로 이어졌다. 마치 산길을 걷는 동안 바다가 없는 올레길을 부정했던 내 모습처럼.


제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바다뿐 아니라 산과 들, 사람이 살아가는 평범한 모습에서도 나온다. 화려한 풍경과 단조로운 일상이 함께 공존해야만 제주가 완성되는 것처럼, 사랑도 상대의 모든 면을 보아야만 진짜가 된다.


올레길을 걸으며 이런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 사실이 나를 당장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다음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좋은 것만 보려는 습관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다를 좋아하는 내가 이제 산길의 의미도 조금은 알게 되었듯이.


좋은 것과 나쁜 것, 두 얼굴을 가진 모든 것이 진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랑도, 삶도 온전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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