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으로 완성되는 게 있고, 넘쳤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도 있다. 이 문장은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 삶에서 자주 마주치는 일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완성이라는 건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착각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아쉬움에서 완성된다는 건 참 묘한 말이다. 어딘가 부족하고 끝이 애매했기에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뜻일 테니까. 예를 들면 첫사랑. 잘 안 됐고 그래서 아쉽지만, 그 아쉬움이 그 사랑을 더 빛나게 만든다. 이루어졌더라면 그냥 평범한 연애로 끝났을 텐데,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마음속에서 계속 재생되고 미화된다.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이나 지나치게 떨려서 엉망이었던 순간들이 오히려 그 사랑을 완성시킨다. 아쉬움은 그래서 좀 교묘하다. 끝났으니까 더는 손댈 수 없고, 결국 그 여백을 상상으로 채우면서 스스로 ‘완성됐다’고 느끼게 만든다.
반대로 넘침에서 완성되는 건 좀 더 직설적이다. 가득 찬 감정이 더는 담아둘 수 없을 때, 우리는 행동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감정이 너무 넘쳐서 더는 혼자 간직할 수 없을 때, 결국 고백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고백해서 연인이 된다면, 그 순간이 하나의 완성이다. 물론 그 뒤로 이어질 무수한 일들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겠지만, 그 넘침이 없었다면 그 완성도 없었을 것이다.
근데 솔직히, 넘침이나 아쉬움이나 결국은 그 순간에만 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거다. 아쉬움이든 넘침이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여백이 생기고, 그 여백을 다시 무언가로 채우려 애쓰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첫사랑은 미화되지만 결국 ‘그땐 그랬지’ 하면서 그냥 추억으로 남는 거고, 넘쳐서 고백했어도 그 관계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거라는 보장은 없다.
이야기를 조금 돌려보자. 예술도 마찬가지다. 많은 작가들이 아쉬움으로 작품을 끝내고, 넘침으로 작품을 시작한다고 한다. 글이든 그림이든 다 완벽해 보일 수는 없다. 어떤 작품은 이걸 더 고쳤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 속에서 마무리되고, 어떤 작품은 감정이 넘쳐서 도저히 멈출 수 없을 때야 비로소 완성된다. 하지만 그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각한다.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하고. 완성이라는 건 결국 그 순간의 만족감일 뿐, 영원히 완전한 건 없으니까.
결국 아쉬움과 넘침은 우리의 모든 행동과 선택에 뒤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아쉬움이 남아서 오랫동안 곱씹게 되는 것도, 넘쳤던 순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결국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완성된다. 그러니까, 완성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 순간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두는 게 더 낫다.
결국, 완성이라는 건 우리가 스스로 설득하고 납득해서 만들어내는 거다.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걸 너무 믿지 말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