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무언가가 곁에서 떠났다.

by someformoflove

또 무언가가 곁에서 떠났다.

이번에도 예고는 없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었던 것들은 이상하게도 떠날 때 가장 조용하다. 소리를 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내 하루 속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떠났다는 사실보다, 그 이후의 공기가 먼저 달라졌다. 방 안은 그대로인데 숨을 들이마실 때의 감각이 이전과 같지 않았다.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정확했고, 나는 그 감각을 부정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내 삶에서는 이런 순간들이 반복되고 있다. 한 번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 하루를 지탱하던 작은 구조들이 하나씩 빠져나간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 밤을 정리하는 방식, 아무 일 없는 날을 ‘괜찮았다’고 말하게 해 주던 기준 같은 것들. 그것들이 사라질 때마다 나는 비슷한 자세로 멈춘다. 슬프다고 말하기보다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쪽에 가깝다.


곁에 둔다는 건 단순히 함께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 존재는 내 하루의 리듬을 대신 맡아주고 있었다. 말이 없을 때도 괜찮다는 감각,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기준. 그런 것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늘 작동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떠난 뒤에야 알게 됐다.


고양이를 보냈다.

그 존재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대신 시간을 정리해 주었다. 밤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해 주었고, 이유 없이 불안해지는 순간들을 바닥에 묶어두는 역할을 했다. 떠난 뒤 집은 조용해졌지만, 그 조용함은 안정이 아니라 노출에 가까웠다.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또렷해졌고, 혼자라는 감각이 이전보다 분명해졌다. 나는 그 변화 앞에서 슬픔보다 적응을 먼저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직접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가족을 보냈다.

그건 관계 하나가 사라진 일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방향이 하나 없어지는 일이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안부, 묻지 않아도 될 것 같았던 질문들.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감정으로 오기 전에 구조로 먼저 다가왔다. 나는 이제 어떤 선택 앞에서 더 오래 머문다. 조언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조언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이 사라졌다는 점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함께 살아가던 생명도 보냈다.

그 상실은 내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슬픔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은, 직접 잃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무게를 남긴다. 나는 그 슬픔을 대신 살아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었다. 다만 같은 공간에 머물며, 말없이 시간을 견디는 역할만을 할 수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위로가 언제나 말의 형태로 오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사람은 많은 것을 잃고도 살아간다.

그리고 어떤 하나를 잃고는 더 이상 살아가지 않기로 선택하기도 한다.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의지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삶을 맡기고 있었는가의 문제에 가깝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삶이 어떤 구조 위에 서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떤 상실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던 축 하나가 사라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러워졌다.

떠나간 것을 의미로 만들지 않으려 애쓰고, 남아 있는 것을 이유로 붙잡지도 않는다. 다만 내 안에서 아직 작동하고 있는 감각들을 함부로 정리하지 않으려 한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남은 사람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건너야 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부터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감각이 되었다.

회복은 느려졌고, 익숙해지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졌다. 감정은 줄어든 게 아니라, 겉으로 나오지 않고 안쪽으로 가라앉았다. 예전에는 반드시 말로 꺼내야 했던 것들이 이제는 말없이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조용하다.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이 너무 오래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떠나간 것들은 여전히 내 하루 어딘가에 남아 있다. 문득 멈추는 발걸음, 이유 없이 오래 바라보게 되는 풍경, 설명할 수 없이 가벼워지거나 무거워지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그 흔적들을 밀어내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잠시 머문다. 함께 있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그렇게 확인하는 쪽을 택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흘려보낸다.

울기도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음 날을 살아내기도 하면서.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법으로. 나 역시 그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이제는 안다. 잃은 것들 때문에 무너지는 삶만 있는 게 아니라, 잃은 것들 위에 조심스럽게 서 있는 삶도 있다는 것을.


최근 들어 내 삶에서는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나갔다.

살점처럼 느껴질 만큼 가까웠던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도려내진 자리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감각과, 그럼에도 이어지고 있는 하루들이 남아 있다. 나는 그 위에서 오늘도 살아간다. 단단해지려 애쓰지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지도 않으면서. 다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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