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팽이 떠난 후 첫 번째
지난 10월 23일부터 2박 3일.
우리는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뭐, 이제는 뤼팽이도 떠나고 늘 둘이 호젓하고 고즈넉하게 지내고 있지만 집이 아닌 곳에서의 시간은 또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뤼팽이와 함께 해온 15년동안, 나는 아무때나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우리가 돌보아야하는 뤼팽이에 대한 책임감때문에 늘 마음속으로 부담스러웠고 힘들었다.
이제 뤼팽이는 떠났다. 그 사랑스럽던 꼬마가 떠난뒤 슬프고 마음 아팠다. 두달여가 지난 지금도 뤼팽이가 보고싶고 생각할때면 눈물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제는 늘 마음 속으로 느껴왔던 책임감에대한 부담은 사라졌다. 이제는 얼마든지, 우리 둘 아무때나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게된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사실이 그리 실감나지 않는다...어쩌면 여행경험이 충분치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는 원래 여행을 귀찮아하는 사람이었을까...
어찌되었거나, 우리는 뤼팽이와 이별후 첫 여행을 계획했다. 길지 않은 며칠동안의 시간이나마 몸과 마음을 놓아주고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길고 느린 한숨을 쉬어도 좋을 듯하다.
낯선 곳에서의 하루, 이틀...낯선 침대에서 선잠을 자고 바쁜 일정 없이도 몸에 새겨진 알람대로 이른 새벽에 눈을 뜬다. 그리고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살림하느라 쓸고닦지 않아도 되고 무한대로 늘어난 시간을 마음껏 게으름피우며 느리게 어루만지며 빈둥거려도 된다. 아침저녁으로 부페를 때려먹어 배가 불러도 걱정이없다. 조금만 늘어져있으면 곧 나아질테니.
가끔 상상해본다.
호텔에 살면 어떨까? 날마다 여행온 사람처럼 남의 손에 방청소를 일임하고 셰프가 해주는 식사를 조석으로 먹으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좋을까? 늘 내손으로 쓸고 닦으며, 내손으로 밥을 하고 조리를 하던 삶을 벗어나면 나는 정말로 기쁠까?
남에게 모든 살림을 맡기고나서 아무 할일도 없으면? 아마도 얼마지나지 않아 참 지루하고 막막한 삶을 살게될것도 같다. 남에게모든 살림을 맡기고 나서 내가 하고 싶었던, 그동안 해야 했으나 하지못했던 일을 열심히 할 시간을 얻게 된다면 보람있겠지만.
그러니 어쩌면 내손으로 쓸고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생활의 모든 요소들을 포함함으로써 비로소 내 삶은 완성되는 것 아니겠나...
하여, 가끔 이렇게 하루이틀, 혹은 한두달정도씩만 남이 해주는 밥을 먹으며 남이 정돈해주는 숙소에서 선잠을 자는 정도로도 나는 참 만족하겠다.
길지 않은 휴가라 지루하지 않고 적당히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했다.
늘 힘들게 몰두하여 일하는 남편에게도 짧으나마 편한 휴식이 되었기를-
이제 신발끈 고쳐매고 다시 걸어가야지,
둘이 손 꼭 붙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