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두어 번, 정말로 곯아떨어지면 알람 소리에 눈을 뜨기도 하지만 웬만해서는 내가 먼저 일어나는 편이다.
그것은 어쩔 때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강박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알람보다 내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 93년이던가 94년이던가 그해 수영강습을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주욱- 올해 1월까지만 해도 나의 하루는 새벽에, 늘 알람보다 먼저 눈 떠 어둠을 뚫고 수영장에 다녀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영이 늘 참을 수없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겨울이면 어둠과 한기를 뚫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깊은 곳에는 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더 자자'는 악마의 유혹을 언제나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자유수영을 마치고 나올 때의 상쾌함과 개운함은 그 어떤 보상보다 달콤하고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어느덧 나는 물속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즐겁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순간순간 물과 한 몸이 되어 그저 다정하고 보드라운 물의 결을 가르고 어루만지며 한 마리 물고기처럼 기쁨을 만끽한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잠정적으로 본의 아니게 중단된 상태이다. 최근에는 폐쇄되었던 수영장이 문을 다시 열었다며 어서 다시 나오라고 수없이 나를 유혹하고 있으나 일단, 내년까지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참고 견디기로 했다. 가끔은 오래전 돋아났던 반짝이는 비늘들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머지않아 언젠가 보드라운 물속으로 돌아가면 섬세하고 날렵한 나의 지느러미도 다시 아름답게 돋아나리라.
새벽 수영의 빈칸을 다른 일로 채우기 전 누군가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한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때는 그런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나도 될까, 싶었다. 그리고 새벽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모니터 앞에서 망설이며 이것저것 뒤적이는 시간이 길었으나 어느덧 익숙해졌다.
그렇게 나는 나의 새벽을 다시 발견했다!
이제는 나의 새벽을 글쓰기에서 나아가 새로이 공부로 채워볼까 한다. 학교다닐 때도 멀리하던 공부를 이제사, 남들은 퇴직도 하는 나이에? 그것도 생산직 근로자의 생활에 열렬히 매진하느라 책 한 줄 못 읽고 있던 차에 공부씩이나?
실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덤벼보면 녹슬고 굳어가는 머리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절박함과 발작적인 도전정신때문일 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알람보다 먼저 일어나, 간단한 나의 아침을 해결하고 5시가 되기 전 이 자리에 앉았다.
새벽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규칙을 정했다. 5시부터 적어도 6시 반까지는 글쓰기.
그다음에 같은 단지 내 맞은편 동에 혼자 씩씩하게 사시는 엄마에게 들렀다가 출근하기.
지난주 우측 수족마비현상으로 응급실로 실려갔던 엄마는 오늘 무사히 퇴원하신다. 뇌경색진단을 받았으며, 뇌혈관이 몇 군데 좁아졌음에도 다행히 증상이 가벼워 후유증 없이 모든 기능이 거의 회복되었다. 다만, 구순의 노인네가 혼자 지내는 것이 위험스럽다는 판단으로 퇴원 후 우리 집으로 오시기로 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에게는 더 낫다. 출퇴근 시 엄마 집에 오가는 일은, 마주 보는 위치에 살고 있다 해도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부터는 요양보호사가 낮에 돌보고 아침저녁은 늘 하던 대로 내가 챙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