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시작과 끝
평범한 보통의 가정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다.
살다 보니 걱정 없는 가정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본인에게는 한없이 크고 무거운 십자가일지언정, 제삼자에게는 그저 타인의 삶에 관한 무수한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지극히 사적인 개인사를 굳이 떠들 필요 없다고, 다시 깊은 서랍 속으로 단단히 봉인해두곤 했다.
또다시 이상하다,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경우에도 늘 마음 한쪽이 무겁고 서글프고 위축되는 자신을 느꼈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내가 솔직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내가 부끄러웠다. 감추는 나와 꺼내 놓을 용기 없는 내가 부끄러웠다.
어느덧 지금, 구순에 이른 어머니의 쇠잔해지는 모습 앞에서 부끄러움도 서글픔도 희미해져 가는 듯했다.
불현듯 어렴풋한 멜로디가 들려오던 어느날,
지금이 아니면 영영 나는 침묵속으로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침내 나는 희고 막막한 페이지를 열었다.
나의 페르소나와는 다르게 은닉된 감정은 언제나 들끓었다. 내성적이면서도 거칠고 난폭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비명을 지르듯, 움켜쥐면 꽥꽥 소리가 나는 고무인형처럼 입을 열기만 하면 감정적이고 공격적이었다. 말하자면 심리적 장애라고나 할까.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겠지만, 언제나 심리적으로는 대체로 위축되고 긴장한 상태였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가장 가까운 어머니와의 대화다운 대화가 특히 힘들었다.
서로 말은 안 해도 공유되어온 세월만큼의 앙금이 쌓여 있기에, 무슨 이야기든 하려다 보면 누가 목덜미를 움켜쥐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꽥꽥 비명을 지르듯 감정적으로 변해서 끝내 말다툼을 하거나 비난하며 격렬하게 상처를 주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우리의 일상이 분노와 상처의 고통만으로 점철된 것도 아니었다.
대체로 불완전하나마 평온했고 때때로 즐거운 일도 적지 않았으며 부자는 아닐지언정, 어머니의 절대적인 희생과 고통을 대가로 삶은 점점 나아져갔다.
적어도 나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더욱 평화로워졌다.
오래전부터 탈출을 꿈꾸었다.
롤모델이 아닌 부모를 가장 멀리, 제일 먼저, 떠나고만 싶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단 한 걸음도 멀어지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나만 여전히 물리적으로 초근접하여 남아있었다. 그 사실이 어느 때는 힘겨웠다. 물론 언니나 동생도 항상 물심양면으로 곁에서 멀어진 적은 없다. 아마도 자매들이 없었다면, 지난 시간이나 지금이나 나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헤아려보니 투덜거리며 힘겨워하면서도 나는 어머니로부터 적지 않은 것을 물려받아왔음을 알아차렸고, 그것은 이내 확실한 부채감으로 돌아왔다.
말이 통하지 않는, 거칠고 종종 예의 없게 느껴지는 어머니를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시간들이 괴롭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어머니의 끝까지 함께하게 될 것임을 막연히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 날 뜻밖에도, 어머니와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
막연한 확신은 현실감을 가지고 전개되었다.
그렇게도 활동적이고 감당 못하게 드세기만 하던 어머니가 지난해 봄 무렵부터 갑작스레 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로부터 더 많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활력곡선은 더욱 자주 꺾이며 주저앉곤 한다.
언쟁도 비난도 기운이 뻗쳐야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고나 할까...
거동이 편치 않아지면서부터, 내가 구체적으로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알게 된 사실은 어머니에게 무좀이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해 평생 괴로움 속에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한창 일하던 시절에는 너무 바빠서, 이제는 그게 너무 습관이 되어서, 발을 잘 씻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발에는 늘 무좀이 창궐했던 것이다. 날마다 씻고 닦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습관이었다.
지난해 처음 입원 후 퇴원하여 우리집으로 오게 되었을 때부터, 무좀으로 인해 가렵고 껍질이 벗겨진 흉측한 어머니의 발을 처음 자세히 보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누군가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쌍방 간에 특별한 의미가 내포되는 의식이기도 하다 보니 그런 것일까, 전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를 알든 모르든 어머니는 더욱 쩔쩔매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발을 처음 만지면서도 기꺼웠다.
갑작스레, 효녀 코스프레를 하겠다는 생각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는 단지 어머니의 끔찍한 무좀을 없애주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이어진다.
처음에는 꺼리기도 하셨으나 어머니도 이제는 마음 편히 내게 발을 맡긴다.
무좀이 사라지고 매끄러운 살결을 회복한 어머니의 발은 이제 보드랍고 예쁘기까지 하다.
어쩌면 내가 발을 씻겨드림으로써 어머니의 딱딱한 마음의 각질, 세월의 앙금까지도 벗겨지는 것은 아닌가, 문득 생각된다.
어쩌면, 무심코 당신의 발을 만져드림으로써 어머니와 나는 비로소 화해의 과정에 들어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발을 닦아드리며 곁에서 돌보며 어느덧 나는 어머니를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제 나의 남은 과업은 어머니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이제 보니 인생은, 어느 시인의 오래된 시구절처럼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지극히 통속적일 뿐이었다. 통속적일뿐더러 때로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하며 한편으로는 이토록 애처로운 것이 아닌가.
나는, 우리 모두는, 그저 가늠할 수 없는 우주의 한 점으로서 잠시 먼지처럼 이 세상을 떠돌다가 끝내 다시 영원 속으로 흩어져 가는 부질없는 존재들에 다름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나간 하루하루 단 한순간도 건너뛸 수 없는 징검다리를 건너왔듯이, 다가오는 내일 하루하루도 꼭꼭 밟고 지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나는 오늘 그냥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내일의 징검다리를 찾아 가능한 한 성실히 최선을 다해 밟아나가기만 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처음 시작하며, 다시 한번 어머니의 지난 시절에 대해 묻고 싶었다.
예전에 한 번씩 피울음 속에 토해내던 내용들을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미처 밝히지 못한 이야기들을 더 수집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조심스레 어린 시절에 대해 운을 떼는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예민하게 반응하셨다.
더 이상 그 시절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게 역력했다.
나는 그만 자료수집을 포기했다.
그동안 자라며 들어온 내용만으로도, 함께 살아오는 동안 보고 느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기에, 나의 욕심으로 어머니를 더 이상 괴롭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그토록 아프게 새겨진 오래된 당신의 인생의 과오 따위는 잊어버려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까지 제 쓸쓸한 골목을 함께 걸어주신 분들께 진심 감사드립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었음에도 묵묵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