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날이야기2

_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나

by somehow

쓸쓸한 골목과 광장을 오가며, 넘어지고 아파하고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는 동안에도 나는 자라났다.

나를 둘러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대체로 난감하고 불친절했음에도 나는 조금씩 적응해나갔다.


어머니는 자신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설움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열심히 공부시켰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의 허리는 굽어지고 병들어갔다.

그럼에도, 내 삶의 롤모델이 어머니나 아버지였던 적은 없었다.

나는 아버지와 가장 닮지 않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어떤 의미에서든 지금의 부모와 가장 다른 부모가 되기, 지금의 나와 가장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멀리멀리로만 헤매고 다녔다.

그러는 동안 수없이 좌절했다.


스스로의 존재성을 어렴풋이 깨달으면서부터 나는 내가 부끄럽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떨쳐버리고만 싶은 것이었다.

자존감도 자신감도 없이 이유도 없이 언제나 걱정스럽고 서글펐다.

부모가, 부모의 생업이, 누가 말 시키면 눈물부터 삼키는 내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침묵을 일삼았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감추고 나의 부끄러운 내면을 숨기려 노력했다. 상대방은 무심한 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아도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어떻게 내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말머리를 잡아채어 꺼내놓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비열하게도 그들이 따스하게 내미는 손을 정말로 꼭 잡은 적이 없었다.

누군가 호감을 갖고 다가오기 시작하면, 기쁘다가도 이내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 이상, 나를 너에게 태연하게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너에게 내 뒤에 숨겨진 쓸쓸한 골목을 보여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이만 먹은 철부지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늘 미숙하고 불안정하며 알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혀있었다.

딱히 그게 뭐다라고 말하지도 못할 만큼 나는 종종 존재 자체가 실패,라고 낙담했다.

벽 아닌 벽 앞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존재들에게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물러서고 뒷걸음질 치다가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 도망쳤다.


어머니의 기대와 힘겨운 지원 속에서 어설픈 공부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나는 장래에 대한 뚜렷한 목표나 계획을 세울 줄 몰랐다.

삶은 오로지 관성처럼 이어졌을 뿐이다.

똘똘하고 야무진 동생이 자신의 삶의 진로를 스스로 찾아나갈 때에도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번번이 실패였다.


실의와 낙담조차도 눌러 담다 보면 넘쳐흐르듯, 그 언제부턴가 불현듯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대학 때 우연히, 글 한두 편을 교지나 학보에 발표했던 적이 있었고 만만한 게 그 정도였는지, 대학 졸업 후에도 안정되고 의미 있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뜨내기처럼 방황하던 차에, 무작정 예술대학에 정원외 입학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서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나는 의미 있는 스승을 만났다.

그의 수업에서 맨 처음 과제로 제출했던 산문을 두고 나는, 난생처음 가장 격하고 열렬한 칭찬을 공개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내 글에 대한 자기 확신은 물론 알량한 나의 감수성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거의 궁지에 몰린 듯 절망적인 심정으로 '쓰기'에만 매달리던 그때, 스승은 나에게 '너는 이미 충분하다'는 확신과 용기를 쥐어주었다.

그 후로, 몇 날인지 몇 달에 걸쳐 쓰고 있던 작품 한편을 마무리지어 그 당시 첫회 작품 공모를 시작한 어느 문학상 위원회에 던져 넣었다.

아, 우체국에서 그곳으로 작품을 보내던 날의 내 모습과 기분은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저장된 몇몇 장면중 특별히 생생한 한 컷이기도 하다. 창구에서 <OO문학상 담당자 앞>으로 보내는 등기우편을 접수할 때, 나는 얼마나 속으로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일면식도 없는 접수계 직원에게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달리는 차 안에서 삐삐가 울리는 것을 발견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를 달리는 중이었고, 마땅히 공중전화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던 그때 마침 길가 주유소 담벼락에 매달린 주황색 공중전화를 발견했다.

나는 그곳에 일단 멈추었다.

그리고 낯선 지역번호가 포함된 전화번호를 눌렀다.


OO 씨, OO문학상에 소설 응모하셨죠? 당선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뜻밖의 낯선 문장이 불쑥, 공중전화 수화기를 건너왔다.

가을 햇빛이 눈부셨고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 진짜요....? 감사합니다!


스물 아홉, 그 어느 해 9월의 어느 날, 어쩌면 그것은 내 인생의 전환점인 듯했다.

얼떨결에 통화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나는 아무리 해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입을 꼭 다물어도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되다니,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로부터 나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스승이 불어넣어준 용기에 더해 나도 무언가 할 줄 아는 게 있다는 사실이,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세상에 툭 던져진 이유 하나쯤은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게 해 주었다는 점이, 공식적으로 등단을 했다는 정도가 의미라면 의미일 것이다.

그 후로도 내 글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했다.

수년이 더 지나서 본격적으로 상업적인 출판 계약이 이루어지면서 내 원고가 책으로 하나 둘 출간되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나는 자신에 대해,

조작된 자신감이나 용기일망정,

스스로에게 불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나는 비로소 더듬더듬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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