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날이야기

_나를 위한 변명 2

by somehow

#1

8살. 아이는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더 늦기 전에 1학년에 입학했으나 그 무렵 신장염에 걸려 병원에 다니느라 첫 한 달 가까이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뒤늦게 혼자, 처음 등교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의 낯설고 동떨어진 느낌을 아직도 희미하게 기억한다.

아무도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외로웠던 것일까?


흐리고 찬 날씨의 어느 날, 혼자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이는 운동장 둘레의 그 높직높직한 계단식 스탠드에 한동안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하늘은 흐렸고 아직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할퀴듯 스쳐갔다. 잠시후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 일어서던 순간, 몸의 중심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굴렀다.

그날 아이의 얼굴은 시멘트 계단이 갈아놓은 상처로 범벅이 되었다.

주로 콧등 부분이 벗겨지고 피가 났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이는 울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얼굴에 피가 나고 쓰리고 아팠겠지만 아프다 소리는 한 적이 없다고 기억한다.

말도 안 되게, 아무 일도 아닌 척 조용히 교실로 돌아가자 그 얼굴을 보고 오히려 놀란 사람은 선생과 아이들일 것이다. 그 뒤, 선생이 어떤 조치를 취해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교 후, 콧잔등이 벌겋게 벗겨진 아이가 시침떼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엄마가 놀라는 장면이 오버랩되고 아마도 약을 발라주었겠지... 여기까지가 소심하고 엉뚱하고 충격적인 나의 옛날이야기, 한 장면이다.


나는 지금도 의문이다.

왜 그렇게까지, 추운 날씨에 높다란 운동장 스탠드에 혼자 나가 앉아 바람에 떨다가 얼굴을 갈아먹었을까... 어린 시절 콧잔등의 흉터는 기억 속에서 흐려지듯 피부에서도 점점 사라져 갔다.


#2

그 1학년이 끝나가는 겨울 어느 날.

엄마가 털실로 떠준 옷을 입었다. 털바지도 입었는데, 공부시간 중에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지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은 아직 멀었다. 아이는 속으로 전전긍긍한다. 점점 쌀 것 같다....

참다가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간신히 용기를 내어 일어나 선생님에게 모기만 한 소리로 말한다.

화장실 갔다 와도 되나요...

그 순간, 오줌보가 터지고 울음도 터졌다...

뜨거운 오줌줄기가 털바지 속으로 흘러내린다...

선생님이 아이를 달랜다.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달래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쉬는 시간이 되었는지 난로 근처에 앉은 선생은 제 무릎아이를 앉히고 얼마나 젖었나 보자며 바지 허리 속으로 손을 넣어 더듬는다....

그 당시에도 아이는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을 얼핏 한 것 같다... 그 순간의 기억도 그냥 흐릿하다.


#3

1학년 겨울방학이 미처 끝나기 전, 가족 모두가 서울로 옮겨 간다.

짐을 실은 트럭에 네 식구가 운전기사 옆에 어떻게 구겨앉아 흔들리며 달린다.

아직 어린 두 딸을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각 한 명씩 무릎에 앉혀 끌어안고 있다.


그 후, 초등학교 2학년으로 전학한 소녀의 가족은 이모네 집 근처에 터를 잡았다.

그즈음 동생이 시골로 보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모네 아이들은 3남 1녀.

소녀에게 이종사촌지간이 되는 딸, 아들 1, 아들 2, 아들 3의 구성이다. 소녀에게는 사촌 언니인 장녀가 있고 사촌 오빠 둘과 저보다 한 살아래 사촌 동생 되는 남자애가 그들이다.

그중 오빠 1은 소녀보다 5~6년 위이고, 오빠 2는 형보다 두어 살 아래이리라.

가족이 서울로 옮겨간 후 가까이 살기도 하고 친척간이고 나이 터울은 있어도 고만고만하다 보니, 외로운 소녀는 사촌 형제들을 따라다니며 함께 놀았다. 사촌 남자 형제들의 전쟁놀이도 엉겁결에 따라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의 언짢은 장면이 있다.

솔직히 이 장면을 소녀는 그동안 별일 아니라고 잊으려 무수히 노력했다.

이것은 소녀에게, 아니 사실은 현재까지도 나에게 목에 걸린 또 하나의 가시처럼 찝찝한 기억이다.

소녀보다 5~6세 정도 많은 사촌 오빠 1은 똘똘했는데, 그래서 제 스스로도 의사가 되겠다고 어릴 때부터 장래에 대한 계획이 야무졌다. 소녀가 초등 2~3학년일 때 그는 중학생이었을 것으로 기억되는데, 의사가 되겠다는 포부에 걸맞게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핀셋이나 의료용 가위 등 금속 의료기구 비슷한 도구가 담긴 세트도 가지고 있었다.


심심하던 소녀는 그 어느 날도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

마침 사촌 오빠 1과 2만 집에 있었다.

놀러 온 사촌동생과 제 동생에게 사촌 오빠 1이 병원놀이를 제안한다. 그의 꿈은 의사였으니 늘 그런 쪽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사 역을 자청한 그가 나머지 역할을 배정했다.

오빠 2는 약사. 저쪽 방에서, 마침 부엌에 있던 생고구마를 잘라서 약처럼 가지고 대기하게 했다.

소녀에게는 환자 역할을 맡겼다.

소녀는 금세 알아들었다.

취학 전후 즈음 병원에 다니느라 학교에도 못 갔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의사가 환자에게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말한다.

환자는 그가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의사가 물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환자가 대답한다.

무릎이 아파요.

서울로 오기 전, 앓았던 신장염과 무릎이 아파 한동안 잘 걷지 못하는 증상을 경험했다. 그래서 걷다가 종종 쉬기도 했던 기억이 남아있었기에, 그날 소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리가 아파서 진료받으러 온 것으로 상황을 연출하기로 한 것이다.

환자의 대답에 그가 지시한다.

진료를 해야 하니까 바지를 내리세요.

아픈 무릎을 진료받기 위해서는 그냥 바지를 걷어올리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대사에 소녀는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환자는 왠지 의사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얌전히 바지를 내렸다.

그가 다시 말했다.

팬티까지 내리세요.

환자는 더욱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와 환자 둘 뿐인 조용한 방 안에서, 이상하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그대로 따르고 말았다.

그 다음, 의사가 누우라고 한다. 그리고, 방바닥에 누운 환자의 몸을, 팬티가 내려진 부위를 의사는 한동안 자세히 살폈다. 의사처럼 한쪽 손과 핀셋을 이용했다.

소녀는 곧 후회하기 시작했으나 굳어진 채로 아무런 다음 동작도 하지 못했다.

어서 빨리 이 진료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얼어붙어 있었다.

진료가 끝나자, 엉터리 의사가 처방을 내렸다.

약사에게 가서 약을 받아먹으면 나을 거예요.

소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표정을 감추고 얼른 옷을 추슬렀다. 그리고 약사인 오빠 2에게 갔다.

오빠 2는 고구마를 지키고 있느라 소녀와 오빠 1이 둘이서 무슨 장면을 연출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날, 둘 사이의 비밀은 그렇게 완성되었을 뿐이다.

소녀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약으로 주는 고구마를 받아먹었다.

그러는 동안 소녀의 가슴은 밖으로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크게 뛰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작은 잔머리를 굴렸다. 더 이상 그곳에서 그런 놀이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기분이 나빴고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괴로웠다.


다음 순간, 어린 소녀는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여 오빠 1과 2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심부름하라고 시킨 거 있는데 깜빡 잊어버렸어.... 빨리 가야 돼....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아무도 없는 집으로 달려가면서, 무릎이 아프다고 했던 것을 틀림없이 후회했다.

그냥 팔이나 머리가 아프다고 했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8~9세 무렵,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친구도 없는 외로운 여자아이에게 일어난 일은 사실 고작 그게 다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불현듯 떠오를 때면 나는 어쩐지 힘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아무렇지 않게 그들과 어울리며 성장했다. 뜻밖에도 그 직후에는 진짜로 기억하지 못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에 어느 날 문득문득 그날의 그 적막과 일련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될 때면 알 없는 감정으로 불현듯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그때서야 나는 그 어린 날, '싫어'라고 표현하지 못한 것을 날마다 후회했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웃어넘기려 애쓰며 실제로 잠시잠시 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훗날, 정말로 의사가 되어 잘 먹고 사는 그의 얼굴을 어쩔 수 없이 대하게 될 때면 불현듯,

그날의 장면이 겹쳐져 마음이 불편했다.

이제 와서 그것이 성추행이었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으나 언젠가 한 번은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정말로 어떻게 물어볼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릴 때의 그 일을 기억하는지, 좀 잘못된 일 같지 않냐고, 미안하다고 할 생각 없느냐고.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는 기억하지 못할까? 어쩌면 그는 내가 잊어버렸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니 그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과할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용기가 없어서 그냥 뭉개고 앉아 쌩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병원놀이였는데 뭐가 문제였냐고 할까봐,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서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이다.


결혼 전 어느 날인가, 남편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다. 저 사촌을 보면 마음 불편한 일이 있다며.

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뿐더러, 한술 더 떠서 자기가 '당한'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그 역시 나만큼 어릴 때, 집안에 함께 기거하는 보모에게 비슷하게 당했다는 것이다.

모가 어느 날 고추가 얼마나 컸나 보자며 다락방에 데리고 가서 열어서 만졌다던가, 보았다던가...


그 옛날, 우리는 모두 왜곡되고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성관념의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


나만의 일이 아닐 수도 있고, 그 정도 일을 왜 문제삼으려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내가 오늘에서야 이 이야기를 난생처음 글자로라도 한 자 한 자 표현해내는 데까지도 아주 힘겨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가 시켰다고는 하나 저항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 그 지시를 따랐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게 후회스럽다.

어려서 잘 몰랐겠지만 아마도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수치심이나 모욕감,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가족이나 다른 친척에게 털어놓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친족은 더더욱,

에이, 뭐 그런 별것도 아닌 일로 평생 마음을 쓰고 그러냐, 고 할까 봐, 그러면 내가 더 비참해질까 봐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랫동안 그 일에 대해 누구에겐가 위로받고 싶었다.

내 스스로 지시를 따랐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이제는, 괜찮아 질지도 모르겠다.

무척 부끄럽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오늘 처음으로 이야기하며 마침내 털어버리기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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