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만 2021년에도 여전히 잘 살아있음을, 아직 나를 기억할지도 모르는 당신들과 이 봄, 다시 교신을 시작하는데 의의를 두려 한다.
부지불식의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는 삶의 무게에, 불현듯 정신을 차린 나는 그제서야 바로 코앞까지 닥쳐온 생생한 현실감에 생의 의욕조차 잃고 말았다.
어떤변명을 동원하여 나를 항변한들 결국 구차한 핑계에 불과해보였다. 그러므로 방법은 하나, 묵묵히 헤쳐나가거나 그냥 그대로 셧다운되거나.
그로부터 나는 하루하루 후회와 반성의 나날을 촘촘히 밟아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죽을 때까지도 충분하고도 진정한 성찰의 단계에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과오와 후회와 반성과 절망과 좌절과 슬픔과 반짝이는 짧은 환희로 뒤범벅인 내 하루하루를 용기 내어 눈물 닦아내며 최선을 다해 계속 진행해 볼 작정일 뿐이다.
그러한 결심은 MOVE_이사,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남편은 어머니와 함께 지내기 시작한 지 6~7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어머니의 집으로 살림을 옮겼다.
두 집 살림이 한집으로 합쳐지는 데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살림을 합치기로 결심하기까지 불가피한 이유가 발생했고, 그로부터 나와 가족들은 보다 효과적이고 지혜롭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혹한의 추위가 얼굴을 핥아대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거짓말처럼 얽혀있던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은 큰 힘이 되었다.
또한 나는 신의 존재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확신을 얻었다.
나는 간절히 하느님께 기도했다. 어느 순간, 그분의 뜻이 아니라면 결코 해결될 수 없을 매듭이 풀렸다. 나는 오래전부터 천주교 신자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내가 우선이었다.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왜 신에게 매달리나... 안 되는 일이 있다면 그 또한 내가 열심이지 않아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급해져서 기도를 하더라도 먹히지 않는다 싶으면 내 기도가 간절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더 이상 한 걸음도 비켜설 자리가 없었다. 그냥 한발 더 내밀면 천 길 아래로 떨어지는 것만이 그 불구덩이를 벗어나는 방법일 뿐이었다. 나는 언제든 그럴 생각이었다.
언제 죽을까. 언제 천 길 아래로 발을 내딛을까 가늠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죽는 건 언제든 가능하구나. 그렇다면 내일 죽어도 되니까 오늘, 오늘 하루만 더 최선을 다해 보자, 오늘 하루씩만 더 열심히 간절하게 기도해 보자.
나는 날마다 무턱대고 책상 위에 걸린 십자가상을 향해 기도했다. 이번에는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다. 예전에는 당신이 이렇게 나를 도와준다면 나도 이렇게 하리다.. 뭐 그런 식으로 기도를 했다. 일종의 딜을 했던 것일까... 어리석고 미욱한 나는 교활하게도 그분과 협상 기도를 일삼았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다만 오늘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기도했다.
어느 순간,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제 나는 언제 죽을까 가늠하지 않는다. 매일 기도하며 하루하루 감사할 뿐이다.
원래 살던 아파트와 마주 보고 있는 동에 있는 어머니의 집은 앞으로 탁 트인 기막힌 전망을 가지고 있다.
앞, 좌우로 다른 동들로 둘러싸여 있던 이전의 집과는 다르다. 양쪽으로는 다른 동이 있지만 앞은 찻길 쪽이라 멀리 나지막한 야산과 논밭도 보이고 아직까지는 저 멀리까지도 드넓게 확장된 시야가 펼쳐진다. 또한 같은 남향임에도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의 양과 질이 이전의 집과 다르다.
이 집은 양지바른 언덕 위의 아늑한 둥지 같은 느낌이 충만하다. 나는 예전부터 어머니의 이 집을 좋아했다. 이 집에서 살게 된 것이 나는 너무나 만족스럽다. 어머니 또한 원래 자신이 살던 공간으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더 느끼고 편안해하신다.
이사 후 짐 정리를 마치기까지 한 달 여가 흘렀다. 처음에는 짐들이 집안에 가득했다. 발 디딜 자리를 찾기도 힘들었다. 물론 이사 전부터 짐들을 줄이는 노력을 했음에도 막상 실제로 이사를 감행하고 나자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버려야 할 짐들이 아직 너무나 많았다. 그로부터 나는 거의 매일 짐들을 버리느라 분주했다. 돈도 적잖이 들었다. 옷들도 산더미처럼 버려졌다.
그제야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나하나 사들일 때는 다 이유가 있었고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아깝고 소중해서 입든 안 입든, 쓰든 안 쓰든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었으나 한발 물러나 바라보자니 그것들은 이미 유효한 효용 시기를 지난 것들에 불과했다. 쓸만한 것들은 재활용업자를 불러 실어 보내고 버려야 할 것은 폐기하고 언니에게 보낼 것들은 몇 박스씩 담아 보내기도 했다. 그러자 집안에 공간이 생겨났다. 집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늘 햇빛을 받는 유리구슬처럼.
책에 파묻혀 사는 남편의 서재를 정리하는 일이 당사자로서는 가장 힘든 일이었을 것이나 그럼에도 그 역시 어찌어찌 정리가 되어갔다. 그 역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심정으로 새로운 각오와 빛나는 얼굴로 제자리를 잡았다. 뜻밖에도 이사오자마자 그에게 일과 관련하여 좋은 일이 하나둘 이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책 정리에 골머리를 앓는 남편이 다시는 이사하지 않겠다고 비명을 지르기는 하지만, 아마도 가끔씩 움직여주는 것, 더 좋은 삶의 터를 찾아 이사를 하는 것은 한 번씩 필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쩌면 2021년, 저 드넓은 창으로 스스럼없이 들어오는 햇살처럼 반짝이는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