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생과 사의 기로
4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있고, 그 시간동안 익숙해져 있던 어르신들이 있는 곳이라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적응하는 부담없이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듯했다.
예상대로, 출근 첫날부터 나는 곧바로 실전에 투입되어 벽돌깨기하듯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내었다.
내가 자리를 비웠던 넉달사이, 어떤 요양보호사는 퇴사를 했고 더많은 새 요양보호사들이 입사했으며, 어르신들도 새로 많이 입소하여 건물의 1개층을 더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증원으로 인해 추가로 사용하기 시작한 4층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에도 원래 다른 층에 계시던 어르신들이 옮겨와 계시기도 했고 새로 오신 어르신들도 보였다.
시간이 날때면 지난해 근무를 했던 2층과 1층에도 가보았다.
그사이 어르신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97세의 나이에도 고관절수술을 견디고 회생하셨던 주희(가명)어르신은 끝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분의 사망원인은 고관절 골절이 아니라, 식사를 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내가 있을 때도 식사를 거부하셔서 한두 술 드시게 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었는데, 그후 점점 더 심해져서는 끝내 아예 입을 벌리지도 않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럴 경우, 비위관을 삽입하게 된다.
요양원측에서 어르신의 가족에게 연락하여 비위관삽입을 의논하였는데, 뜻밖에도 가족은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본인이 스스로 식사를 거부한다면 비위관까지 삽입해서 억지로 생명연장을 하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그 가족들의 고뇌또한 깊었을 것임은 누구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나는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다른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기도 했다.
비위관을 통한 급여는 그야말로 생명연장의 의미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내 어머니의 경우에서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 얼마후 주희 어르신은 결국 눈을 감으셨고, 그제서야 가족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외에도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시점까지도 스스로 거동하시던 어떤 어르신들은 와상환자가 되어있거나 혹은 기력이 더욱 쇠약해지고 인지력도 나빠진 상태로 변화되어 있었다.
특히 이미 수년 째 비위관을 꽂은 채 누워있던 또다른 어르신은, 인지력이 거의 없어서 의사소통은 불가능한 상태로 시간맞춰 유동식만 급여하는 상태였으나, 지난 몇달 사이 급기야 기관절개술을 통하여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고 있었다. 강제로 급여를 하고 강제로 숨을 쉬게 하여, 극단적으로 생명만 연장시켜둔 상태인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변화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들이 아닌가.
놀랍지만 놀랄 일도 아닌 것이다.
80~90세를 넘은 어르신들은 아무리 열심히 먹고 운동을 한다고 해도 하루하루 더 나빠지는 것만이 예정된 결과가 아닌가.
어느 가족은 비위관삽입을 거부하고, 또 어떤 가족은 비위관뿐 아니라 기관절개술을 해서라도 부모의 생명을 연장시키려 애쓰는 것을 보며 과연 무엇이 옳은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답은 쉽지 않다.
누가 옳고 그른가 따지는 일은 불가하다.
어머니 생명연장을 위한 비위관 삽입을 거부했다고 해서 그 자녀를 비난할 수는 없다.
혹은 기관절개술은 물론 그이상의 수를 쓰더라도, 부모가 그저 옆에서 살아 숨쉬어주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된다고 위로받는 자녀를 두둔만 할 수도 없다.
나도, 내 어머니가 비위관을 꽂은 채 정말로 생의 마지막 몇걸음을 남겨둔 상태임이 명백할 때조차도 그대로 조금이라도 더 살아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제 그만 편안해지셨으면 하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으로 갈등을 겪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