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옮긴이 김화영의 해설 『걷기 예찬』 중
세계가 우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파악하기 어려워질 때 그 지주로서 남는 것은 몸이다. 몸은 알쏭달쏭하여 감이 잡히지 않는 삶 속에서 살을 다시 찾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다. 몸을 다듬는 것은 세계에 매달리는 하나의 방식으로 변했다. (...) 폴 발레리가 말했듯이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그래서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인식의 예찬이다.
걷는 동안 우리는 길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공간을 넓힌다.
밤이 찾아와
하늘의 푸른빛을 밀어내고
대지를 어둠의 외투로 덮는 순간
두근두근
시작된다.
방황의 시간
방랑의 시간
공백의 시간 —
발은 길을 더듬고
거리를 쌓고
마음을 쌓는다
쌓임이 비움에 기울 때
비움이 고이면
어느새
원초적 생명의 깊이로 당겨진다.
밤 산책은 걷기보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발은 길을 더듬지만
몸은 점점 더 깊은 생명의 감각으로
끌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