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이 노력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파우스트』에서
위 문장은 한때 나를 지탱해 준 문장이었다.
젊은 날, 방황만 하는 것은 아닐까 자책하던 때
이 문장을 만났고,
그 순간 굳어 있던 생각이 깨지는 충격을 받았다.
타인들이 보기에는
길을 벗어나거나 헤매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나는 마치 과정만 밟고 있는 공허한 행위자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 길은
때로 어리석어 보이기도,
혹은 쓸모없는 발걸음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길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고,
한 발 한 발 집중하며 멀고도 긴 풍경을 바라본 채
외로운 발자국을 남기며 그 좁은 길을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러나 괴테의 문장을 통해
나는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소중한 것들은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쪽에 있었고,
나는 방황하는 사람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 깨달음 이후 내가 걷는 과정에는
조금 더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괴테를 찾아 독일로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괴테가 방황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던 것처럼.
나는 왜 괴테여야만 했을까.
그는 내 꿈이 현실이 되려 할 때 영향을 준 작가였다.
나의 방황이었고,
나의 고뇌였으며,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이었다.
1786년, 생일날 밤*
아무도 모르게,
도주하듯.
괴테는 그림을 배우기 위해
그의 꿈이었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 역시 그의 자취를 쫓기 위해
독일의 낯선 도시들로 향하게 되었다.
그 창은
세상을 바라보는 틈이라기보다
자신을 통과해 나가는 경계처럼 보였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나를 발견했다.
나 역시 등을 보이며
길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디딘 한 걸음.
뒤쪽이 진실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그의 생가를 찾았다.
방 안에 남아 있던 시간과 그가 남긴 책들 사이를 지나며,
나는 그의 시작을 잠시 스쳐 지나갔다.
생각보다 작은 도시였고
나는 거리마다 걸으며
그의 발자국 위에 나의 자국을 꾹꾹 눌러 담았다.
언젠가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은 채.
돌벽은 낮게 숨 쉬고
창문들은 오래된 생각처럼 닫혀 있었다.
시간이 벽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듯,
말보다 먼저 어떤 기운이 닿는 도시였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다본 노을은
오랜 꿈에서 막 깨어난 듯한 전율로
온몸을 관통했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의 주인공들이
해 뜨는 풍경을 바라보던 순간처럼.
그곳에서 나는
상처로 굳어 있던 영혼이 서서히 풀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도시,
그의 품 안에서
한 번의 숨결,
한 번의 스침,
순간의 손결을 지나며
나는 그의 꿈과 그의 방황,
그리고 그의 용기를 느낄 수 있었다.
❝ 젊은 시절의 꿈들을 경계하라. 그것들은 언제나 이루어지고 만다. ❞
괴테의 말처럼
나의 젊은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과 함께
내가 걸어온 길이 담담히 제 자리를 세워가고 있었다.
나의 방황이
노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음을,
나는 비로소 알았다.
결국,
나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여야만 했다.
방황은 길을 잃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괴테의 문장은
나의 과거를 해석해 주었고,
나의 현재를 지탱해 주었으며,
나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했다.
이 글은
그때의 방황이
어떻게 하나의 길이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 출처 : 『괴테의 그림과 글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