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해외인턴

나를 시험해보기

by 썸진

학교 연계 한 달짜리 미국 무급 인턴.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은 이름이었다.


대학교 4학년 과정을 마친 그 시점, 학교에서는 장기 미국 인턴과 함께 처음으로 단기 미국 인턴을 선발해 미국으로의 파견을 계획하고 있었다.

장기 인턴이라고 하면 괜히 부담되는 마음에 단기 인턴을 더 선호하던 나였기에 오히려 한 달이라는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인턴십을 지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인턴에 선발되었다.


명목은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가 맞았지만, 사실 나에게는 또 다른 목적이 한 가지 있었다.

해외에서 외국인과 외국어로 일하는 것에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미국에 교환학생이나 여행으로는 가 본 적이 있었지만, 일하러는 가 본 적이 없었다. 돈을 쓰는 것과 돈을 버는 것(무급인턴이기는 했지만)은 차원이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언젠가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해외의 일터에 나를 던져보고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사실 자신은 없었다. 영어 실력도 부족하고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일주일 동안 잠도 잘 수 없었고, 스트레스에 밤새며 구역질하고, 바닥을 치는 체력으로 출국날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내가 잘 해낼 수 있나 보고 오자.

그런 마음을 안고, 보잘것없어 보이던 한 달 미국 무급 인턴 길에 나서게 되었다.




미국 땅을 밟자마자 짐을 풀 새도 없이 잡혀 있는 면접을 보기 바빴다.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 '너랑 일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면전에서 듣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다른 기업에서 면접을 보고 함께 일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 출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맨해튼 한복판, 타임스퀘어 근처 빌딩이었다. 나 포함 3명 남짓 되는 작은 스타트업이었지만, 일도 재미있었고 뉴욕 한가운데 외국인밖에 없는 환경에서 소통하며 적응해나가고 있는 내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함께 파견되어 하우스메이트로 생활한 친구들과 생활하는 일도 너무 즐거웠다. 서로 퇴근 후 집에서 수다떨고, 장보고, 맛있는 걸 먹는 일들이 너무나 행복했다. 생각보다 나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짧은 기간이라 진정한 어려움은 맞닥뜨리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처음이 항상 두려운 만큼 나는 어느 정도 해외에서 적응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인턴을 하면서 느낀 점은 몇 가지 있었다.


먼저 생각보다 영어로 소통이 자유로웠다는 점. 단기 인턴인 만큼 주어진 역할도 적었을 거고 어려운 일도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회사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영어 원어민의 입장에서 당연히 어눌한 영어였겠지만, 세상에는 원어민의 완벽한 영어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식, 한국식, 러시아식, 파키스탄식, 중국식 영어가 모두 통용되는 곳이 뉴욕이었다. 덕분에 나는 영어로 업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깰 수 있었다.


또, 나이라는 것에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 우리 회사의 대표는 월가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창업한 사람이었다. 대표와 밥을 먹다가, '한국과 미국 어느 곳이 더 좋냐'라는 질문에 '나이에 관련해서는 미국이 더 좋다. 한국에서는 특정 나이에 해야 할 일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 스트레스받는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대표는(한국계 미국인이었다) 뭔지 알겠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더니 '엿먹으라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을 신경쓰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굉장한 위로가 되었다. 내 기준에서 대단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 단호하게 엿 먹으라고 대신 얘기해주니 속이 시원해지면서 동시에 용기를 얻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첫 번째 느낀 점과 이어지는 부분이지만, 나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래도 늘 친구들보다는 영어가 부족하고, 지식도 부족하고, 총체적으로 배울 것이 많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사실 당연한 말이었다. 이제 막 학기 과정이 끝난 내가 뛰어나다고 하면 그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인턴을 하면서 친해진 다른 회사 한국인 대표님이 나를 너무 칭찬해주셨고, 뉴욕 언어교환 모임에서 처음 만난 친구는 나한테 영어를 잘하는데 어떻게 배웠냐며 자신도 알려달라고 진지하게 요청했다. 함께 일하던 러시아인 친구는 내 덕분에 이렇게 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모든 것들을 듣다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이든, 나는 생각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공적이었던 해외 인턴 적응 끝에, 나는 끝까지 일을 마무리하고자 출국날짜를 미루고 일을 2주정도 더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돕던 마케팅 이벤트가 2주 뒤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내가 도왔던 마케팅 이벤트가 성공적이었던 모습도 직접 지켜볼 수 있었고, 이후에 새로 오게 될 다른 인턴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하루종일 수다떨며 친해질 수 있었다. 그 친구와는 아직까지도 연락하고 있다.


짧은 미국 인턴에서 얻은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과 자신감.

함께 생활하며 뉴욕에서의 가족이 되어버린 내 하우스메이트 친구들과,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나는 영어든 무엇이든 내 생각보다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해외 인턴을 지원하게 된 표면적인 목적은 막연한 스펙쌓기를 위해서였고, 조금 더 깊숙이 있던 목표는 해외 일터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나 자신을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막상 인턴에 나선 나는 목표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학교 연계 한 달짜리 미국 무급 인턴이라는 멋없는 타이틀을 통해서 얻은 것은 인생에서 결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언젠가 잘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취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어쩌면 이 경험은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내 기나긴 취준 생활을 위한 좋은 발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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