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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진 Mar 22. 2022

너 살 빠졌더라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누군가에게는 절망을.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너 살 빠졌다!"

"너 살 (더) 빠졌어."

"너 살 빠졌니?"  




"너 살 빠졌다!" 이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혹독한 다이어트에 대한 보상 혹은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 사람이 먹고 싶은 거 안 먹고, 운동하기 싫지만 몸을 움직이고, 두렵지만 체중계에 올라가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을지 상상해본다면 당연히 긍정적인 말이 된다. 아마도 날씬해 보이는 남녀를 포함하여 거의 모두에게 해당되는 경우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 말이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아닌 듯하다. "너 살 (더) 빠졌어." 오히려 절망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마른 게 스트레스인 친구가 주위에 한 명 정도는 있을 것이다. 혹시 주위에 깡마른 친구가 있고, 그 친구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면 시험해봐도 좋다. "야 너 살 (더) 빠졌다?"라고 말해준 후 친구의 반응을 살펴보자. 아마도 표정이 굳거나 화제를 돌릴 것이다. 살이 찌고 싶은 친구에게 살이 더 빠졌다는 말은 절망이다.


누군가에게는 위로의 말. "너 살 빠졌니?"

"  빠졌니?" 얼마  나의 어머니에게 들은 말이다.  말이 기쁨이나 절망이 아닌 위로가  줄은 몰랐다. 사실 울컥했다. 오랜만에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누군가의 " 빠졌니?"라는  말이 이렇게나 위안이 되는 말이었나. 나는 요즘이 직장인으로서, 남편으로서,  15개월 유아를  아빠로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듦이 몰려온 시기이다.


#부서이동을 약 보름 정도 앞두고 발생하는 부서 내에서 말 못 할 직장인 스트레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어 봤을, 혹은 겪고 있을 법한 일이다.  혼자만의 특별한 스트레스는 아니지만 트레스는 역시 그냥 스트레스다. 남의 직장생활 따위. 자세한 상황을 궁금해하진 않겠지만 현재  상황을 군생활로 간략히 설명하자면, 정말 꼬일 대로 꼬인 말년 병장의 상황과 유사하다. 전역을 앞둔 말년에 후임 없이 직접 삽질을 해야 하는 상황이 하나. 여차저차 생긴 후임의 쏟아지는 질문에 건성으로 넘어간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누가 시켰냐는 추궁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상황이 둘.

(참고로 나는 매우 친절한 선배는 아니지만 적어도 불친절한 선배는 아니다. 그렇지만 성인의, 심지어 나보다 먼저 입사한 나이 많은 선배가 하는 "밥은 숟가락으로 먹어야 합니까. 아니면 젓가락으로 먹어야 합니까." 수준의 지나치게 사소한 질문에는 견디기 힘들다.)


#샌드백 남편의 비애

육아에 나름 적극적으로 함께 하고는 있지만 휴직 중인 아내의 육아 스트레스를 대신해 군말 없이 맞아야 하는 샌드백 남편이다. 이렇게  데에는 코로나도  몫했다. 육아 스트레스를  곳이 없는 아내는 화를   있는 곳이 나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퇴근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아내 눈치를 살펴야 한다. 불만이 생겨도 주로 속으로 조용히 삼키지만 가끔은(사실 자주), 남편도 사람이다.


#24시간 풀타임 아빠의 노고

회사에 머무는 9 to 6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육아로 채운다. ~ 9 to 6 휴직 중인 아내가 전담하지만, 그래서 주말을 포함한 나머지 시간은 모두 아빠의 육아시간이다. 누가 시킨  아니지만 남편으로서 먼저 눈치껏 행동하는 중이다. 아내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아내가 육아에 시달리는 절대적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 이런 역할분담이 논리적이기는 하다. 다만, 8시간(엑셀과 함께 하는 미친 듯이 즐거운 업무시간)이나 되는 내 쉬는 시간 외에  개인 시간은 24시간  잠자는 시간이 유일하다.


너 살 빠졌냐며 날 안쓰럽게 쳐다보는 엄마.(평소에는 "어머니"라고 부르지만  말을 들은  순간만큼은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다.) 이게  앞으로의 삶이고 인생인 것인가라며 우울해하고 있을 . 오랜만에 나를  우리 엄마의  한마디는 무엇과 바꿀  없는 위로가 되었다. "아냐.  빠졌어."라고 말했지만  순간만큼은 아빠 엄마에게 안겨 어리광 부리던  시절의 내가 느껴졌다. 한낱 약해빠진  30대의 어리광이려나. 미안하지만  같은 이런 사람이 어딘가에  있길 바라며,  마음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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