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왔는지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마음 한편에 남는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란 질문에 대한 답이 부재였으므로,
마음이 늘 무겁고 쓸쓸했다.
돌아보면 나는 지나간 일들을 곱씹어 마음을 힘듬에 머무르게 하곤 했다. 누군가에게는 해야 할 말들은 애써 삼켜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꺼내어 후회를 남기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채 꺼냈던 말들 속엔 진심이 부족했고,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솔직한 이야기들을 줄줄이 나열한 날엔 '너무 나갔나?'란 생각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혹여나 상대방이 이런 내 모습에 실망을 하진 않았을지 사서 걱정을 하는 날도 많았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어야 했어!'
'아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됐는데...'
이미 지나간 장면들을 붙들고 무의미한 반복재생을 하곤 했다. 이어 집에 돌아와 날리는 이불킥은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크고 작은 실패 앞에서 어떤 날엔 의연하게 버티는 것 같다가도, 또 어느 날엔 모든 걸 다 잃은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때로 돌아가 그러한 결정을 한걸 뒤집고 싶다는 뒤늦은 깨달음과 아쉬움이 늘 나를 괴롭게 했고 지나버린 그곳에 자꾸만 머물게 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과거의 그런 결정을 했던 내가 더욱 바보 같았다. 한때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난 점점 내가 단단해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었더랬다. 막상 다시 모든 걸 잃은 것 같은 실패를 경험했을 때 오히려 이전보다 나약해진 것 같았다.
공들여 쌓아 온 탑은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막막하기만 했다. 세상 모든 일들 중 어느 하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 무력감마저 느껴졌다. 어차피 내가 뭘 해도 앞으로 더 나아질 게 있어? 이러다가 또 이렇게 비슷한 고통이 찾아오겠지, 그런 힘듦을 또 경험할바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며 꽤 긴 시간을 용기를 내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과연, 인생을 살아가며 아무런 후회 없이 사는 사람이 있긴 할까? 과거를 되돌아보는 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다만 그 기억에 머물러 있느냐, 자연스레 흘려보내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어쩌면 나는 과거의 그 어디쯤에 늘 머무르며 현재와 힘겹게 동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과거를 과거답게 온전히 흘려보내지 못했던 탓일까. 새로운 것을 담아내기엔 나의 그릇은 너무 비좁고 초라하기만 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던 적이 있다. 그러한 다짐은 얼마간은 유효한 것 같았지만, 비슷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땐 나는 늘 같은 방식으로 무너지곤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물었지만 되돌이표로 같은 물음이 돌아올 뿐, 쉬이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깊은 상실감.
그때부터였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나를 알고 싶은 갈망이 생겼다. 자신을 잘 정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그러한 갈망은 바쁜 일상들에 치여 금세 사그라든 것 같았다가도 문득문득, 수면 밖으로 드러나 점차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럴 때마다 나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답안지 없는 문제를 마주하게 된 것 같았다. 복잡한 미로 속을 헤매기만 할 뿐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 머무르는 일은 익숙해져 이미 습관으로 굳어진 것 같았다. 엉켜버린 내면의 실타래를 풀고 싶었지만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지나온 날들, 그리고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조금 덜 아프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과거의 못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상처가 아물 수 있을까?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얼마 전, 김주환 교수의 '내면 소통' 강의를 우연히 듣게 된 나는 어쩌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그때의 나는 철저히 무너져 있었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스스로를 탓하며 다그치고 있었다. 다시 살아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는 우리 자아는 하나가 아니라 '이야기 자아'와 '배경 자아'로 즉, 2개의 자아가 존재한다 말한다. [이야기 자아]는 우리의 기억이 만들어낸 자아로 과거의 경험, 직업, 사회적 위치, 인간관계의 기억들을 편집하여 만든 '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 자아'를 진짜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산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 속 내가 실패하거나 상처받으면, 내 존재 자체가 흔들리며 괴로워한다고 한다.
[배경 자아]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묵묵히 알아차리는 자아로 '진짜 자아'라고 한다.
만약 과거에 실수를 했고 그 때문에 현재 괴로워하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여기에서 실수를 했던 모습, 그 바보 같았던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니라고 한다. 그 실수를 했음을 알아차리는 나,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나를 꾸짖는 나가 진짜 내 모습이며 '배경 자아'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야기 자아'는 때때로 실수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 변화하기도 하지만, '배경자아(진짜자아)'는 늘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알아차리고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타인에게는 너그럽고 친절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냉혹하다. 가까운 지인이 힘든 일로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는 크게 공감하며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너무 마음 쓰지 마! 잘될 거야'와 같은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내가 실수를 했을 땐 '왜 그랬을까? 정말 바보 같아!' 하고 바로 스스로를 질책하며 꾸짖게 된다. 이토록 우린 스스로에게는 너무나 엄격하고 관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만약 나의 과거의 실패와 고통도 완전히 분리해서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란 물음을 던져본다. 타인에게는 늘 친절하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처럼 스스로에게도 그럴 수 있다면, 실패의 고통 속에 있더라도 그저 과거일 뿐이라며 조금은 유연해진 자세로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좀 더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조금은 덜 아플 수 있을까.
오늘을 충실히 더 살아내며
내일을 맞이할 용기가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