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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Oct 09. 2023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고단함을 아는 사람

무라카미 하루키, '테네시 윌리엄스는 어떻게 버려졌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에서 연극 영화를 전공했다고 한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 흥미가 있어 와세다 대학의 문학부를 택했다고. 입학 후 첫 학기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쓴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영어로 독해하는 수업을 들었는데, 담당 교수가 테네시 윌리엄스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단다. 그래서 학기 내내 테네시 윌리엄스가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작가인지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듣고 들어, 세뇌를 당한 건지 해당 교수가 나름의 논리와 이유를 잘 펼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하루키 역시 테네시 윌리엄스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세장 남짓의 이 짧은 글 속에 시간이 지나고 하루키가 테네시 윌리엄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라는 식의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그러나 와세다 대학에서의 그 경험을 계기로 하루키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험담하는 것을 주의하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누군가의 창작물에 대해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해석은 다양하고, 얼마든지 비판도 할 수 있지만 오로지 잘못된 점만 찾고 비판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 작품이 별 볼 일이 없고, 작가가 바보같다고 해도 말이다. 그것은 해당 작품과 작가에 대한 비판으로 그치지 않고 그런 비판을 하는 자기 안의 무언가를 무너뜨린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타인을 비판하는데 내 안의 무엇이 무너지는 것일까?

더구나 나는 그와 그의 작품이 욕을 먹어 마땅할만큼 별 볼일 없다고 믿고 있는데?


내 바깥에 있는 어떤 것의 문제점을 계속 찾는 것이

사실은 내 안의 따듯함과 생명력, 궁극에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자기 안에서 무너지는 무언가라는 것은 결국 인간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그렇다고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뒷담화를 하고 돌아올 때 찝찝한 기분이 이런 것일까.

아.. 아까 그 얘기는 괜히 했어. 상대가 욕을 들어 마땅한 사람일지라도, 자리에도 없는 상대를 욕하고 있는 나는 뭐 얼마나 더 나은 인간이려나. 에라이.




이건 이래저래서 문제가 있고,

저건 요래요래서 스토리가 빈약하고,

또 결말은 어쩌고..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더 똑똑해보인다.


그러나 하루키는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되기보다, 바보같이 보일지라도 "이건 이 부분이 참 좋죠!" " 정말 그렇죠? " "저도 여기 좋아해요."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고단함을 아는 사람이기에, 누군가의 작품에 대해 무작정 욕만 늘어놓을 수는 없다고.


이 짤막한 이야기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지만(달리기와 고양이에 대한 글을 읽은 게 전부다.), 그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이고,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 불편한 인터뷰들로 괴롭힘을 당할 거란 것도, 또 그만큼 그의 소설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은 그가 퍽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나 글, 작품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다 저마다의 눈으로 볼테니. 물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자신만의 눈과 안목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따뜻함과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말들은 안 하니만 못할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평론가들은 어깨가 무거울 것만 같다..

(아무 것도 아닌 나도 이러쿵저러쿵 했었지..)


쓰다 보니 자꾸 자아 비판으로 이어져서 ㅠㅠ

나에 대한 애정이 줄어들 것 같아

이만 끝!


(아무튼 하루키는 좋은 사람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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