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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Nov 11. 2023

완벽한 배우자를 찾습니다

그레임 심시언, <로지 프로젝트>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아, 네?


다정한 사람이요.

(요샌 이상형이 사라지고 있어… 한가지 남았다면 차갑지 않은 거? 너무 차가우면 편안함을 느낄수가 없어서 그건 포기할 수가 없다^^)


음.. 그런데


이상형은 정말로 이상적인 사람인 걸까?

이상형과 만나게 되면 정말로 깊이 사랑하게 되려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그간 좋아했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생각했던 이상형에 부합하지 않았단 거다.



내게 맞는 완벽한 배우자를 찾으려는 남자의 아내 찾기 미션, 그레임 심시언의 로맨스 소설 <로지 프로젝트>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거다.


이 책의 주인공은 과학적인 방법에 근거해 살아가고 규칙과 계획을 엄격하게 따르는 유전학 교수 돈 틸먼이라는 남자다. 그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며 사교나 공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친구도 별로 없고, 대학에서는 그를 꽉 막힌 괴짜 취급한다. (하지만 사회성이 조금 많이 부족할 뿐,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고 홀로 남은 이웃 할머니와 저녁을 함께 먹는 그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돈 틸먼이 결혼할 여자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여자와도 두 번 이상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첫 데이트가 마지막 데이트였다.


가깝게 지내던 누나가 죽은 뒤 그는 가족과도 소원해졌다. 그가 만나는 친구는 이웃집의 할머니(그나마도 소설 초반 요양원으로 가셨다.), 집안일을 도와주러 오는 아주머니, 그리고 심리학 교수인 친구 댄 부부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결혼할 여자를,

그것도 이상형에 맞는 여자를 찾겠단 거야?


돈이 선택한 방법은 설문조사를 통해 싫은 조건을 가진 여자를 걸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문조사 항목을 통과한 여자들만 직접 만나보는 거지! 그럼 확률상 원하는 배우자감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교수다운 발상…^^;;)그래서 돈은 엄청나게 길고 긴 설문지(도대체 누가 다 읽고 체크할까 싶은 정도의 목록..)를 만들었다.


담배 피우나요? 탈락.

채식주의자인가요? 탈락.

술 마시나요? 탈락.

약속에 늦는 편인가요? 탈락.

......


그렇게 해서 우리의 돈 틸먼 교수님은 마음에 꼭 드는 여자를 만났을까?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로지!

행운의 여신이 도운 것인지 돈 틸먼은 한 여자에게 빠졌다.홀로 자연사 박물관에서나 느끼던 행복감, 그게 최고인 줄 알았는데,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에 그에 필적할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그러나 그는 로지를 결혼 상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의 배우자 조건에 '완벽하게!' 어긋난, 정반대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로지는 술도 좋아하고, 담배도 피우고, 약속에는 늦고, 채식주의자에, 계획은 깨라고 있는 거라고 믿는 것 같은 여자였다. 그렇다. 행운의 여신은 돈의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로지 역시 돈을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다.)


돈은 로지에게로 이끌리는 마음은 그대로 둔 채 결혼할 배우자를 따로 찾기로 한다. 그 어마어마한 설문지를 통과한 여자가 있긴 있었던 거다. 헌데 문제는 그쪽도 원하는 조건이 꽤 있었단 거다. 이상형의 그녀는 뛰어난 댄스 스포츠 실력을 갖춘, 댄스 대회의 챔피언으로, 돈의 설문지에 적힌 조건에 더해 춤을 잘 추는 남자를 원했다.


춤?

막춤도 아니고 커플 댄스라니,

두번 째 데이트조차 해보지 못한 그에겐 너무 큰 산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이상형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여자를 찾았는데, 그 쯤이야! 돈은 그녀와 파티에서 만나기 전 춤 연습에 매진했고 희망에 부풀었다.


그리고 그녀와 처음 만난 대학 파티장,

이상형의 그녀에게 이끌려 함께 춤을 추게 된 돈.

돈의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의 댄스 호흡은 엉망진창이었고, 여자는 댄스 스포츠 챔피언인 자신에게 망신을 준 돈에게 엄청 화를 내며 떠났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은 실제 살아있는 여자와 춤을 춰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는 음악을 켜놓고 혼자 스텝을 밟으며 연습하고서 실전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거다.


음악을 켜놓고 박자에 맞춰 춤 연습을 한다고 커플 댄스를 완벽하게 출 거라 기대하다니, 돈은 사랑과 연애에 적용한 공식을 춤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똑같은 음악에도 사람마다 리듬과 템포가 다른 것처럼, 실제 만나는 사람은 종이에 적힌 정형화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돈에겐 다행이었다. 그 이상형의 여자를 만났을 때 돈은 그녀에게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행운의 여신은 돈의 편에 섰다. 다른 남자의 파트너로 파티에 참석한 로지가 그 모습을 보고 돈과 함께 멋진 춤을 췄기 때문이다. 아무런 계획,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었지만 그녀와 돈은 마음가는 대로 즐겁게, 꽤 잘 어울리는 춤을 추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하고 맺어지는 해피엔딩.



소설 속에서 돈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는 청소하다 우연히 그의 아내 찾기 설문지를 보고 이런 메모를 남겼다.


“ 돈,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


돈은 로지에게 고백하러 갈 때 영화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애티커스 변호사, 그레고리 펙처럼 차려입고 갔다. 언젠가 로지가 자신은 그 영화 속 그레고리 펙이 가장 멋지다고 이야기한 걸 기억하고서.


그제야 돈은 깨달았다.


이상적인 여자, 사랑할 사람이 아니라

단지 자신을 받아줄 여자를 찾고 있었다는 걸.


돈은 스스로는 아무 것도 바뀌려 하지 않은 채,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모습, 습관은 모두 그대로 둔채

거기에 꼭 맞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 거였다. ‘이상형’이라는 이름으로. 어쩌면 이상형에 목을 매는 건 상대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으로 보지 않으려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상형에 안 맞으면 어쩔 건데? 이렇게 사랑 따로, 결혼 따로가 되는 건가?


그러나 돈은 달라졌다. 그레고리 펙처럼 차려입은 그는 로지가 원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뭐 그리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 모습에 로지가 감동하거나 (좋아하면서) 웃었겠지. 그 꼴은 뭐야? ㅎㅎㅎ


예전에 친구 결혼식장에서 하객으로 참석한 기혼자들이 그랬다. 남편될 사람은 자아가 없는 게 좋다고. 우리 남편은 자아가 없잖아~ 라며 깔깔깔 웃던 그녀와 맞아 맞아 하던 또 다른 사람들. 그때 나는 자아가 없는 사람이 무슨 매력이 있나 생각했었다. 그 후에 자아가 없다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 주관 같은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유연성(?)과 관대함이 있어서 부인의 욕구와 감정을 이해해주고, 말을 따라주고, 흔히 말하는 똥고집 없이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는 남자였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곤 그녀들에게 공감했다. 자아가 없단 건 내 자존심 지키는 것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더 큰 거란 걸. 그 관대함 이면에 사랑이 있는 거겠지. (똑똑한 사람들^^ 진즉 나에게도 알려주지)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면서 내가 원래 가진 모습을 잃게 되는 게 아닐까, 너무 상대에게 맞춰가는 게 아닐까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20대의 나는 그랬다. 우리가 서로 달라서 헤어지는 것도 두려웠고, 내가 그간 가지고 있었던 자아가 사라지는 것도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내가 규정하고 있는 내 모습과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또 일치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도 있고, 바뀐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상대방이 떠날까봐 두려운 마음, 그 하나 때문에 갈등을 피하고 맞추려는 건 문제겠지만 그게 아니라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레고리 펙 분장 따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나는 <올스 미스 다이어리>의 최미자를 좋아한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ㅡ

다들 예쁘고, 매력이 넘친다.

볼 때마다 나는 같은 여자인데도

우..와…

하면서 반한다.


그 중에서도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 예지원씨가 연기한 최미자는 이른바 나의 최애 캐릭터다.

최미자는 어떤 사람인가?

(당시 기준으로) 노처녀에

조금 많이 덜렁 대고 푼수 기질이 있으며

술 마시고 주정도 많이 하고 일 하다 사고도 종종 치는…

어쩌면 이상적인 배우자감은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모든 게 미자였다.

미자는 완벽하지 않아서 사랑스러웠다.


로지도 그랬다.

물론 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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