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재작년인가, 인공지능 스피커로 인해 홀로 사는 할아버지가 목숨을 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화장실에서 쓰러지면서 “도와줘!”라고 소리친 것을 AI 스피커가 인식해서 정보 업체에 전송한 결과 119 구급대가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또 인공지능형 인형을 손자 손녀 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인형이 "할머니 사랑해요." "약 드실 시간이에요."라고 이야기를 해줘서 나이 드신 분들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기사도 읽었다. 이 기사들을 읽으면서 옆 자리의 선생님에게 "와! 이런 세상이 왔네요!!"라고 말하며,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도 AI 스피커를 사드려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 (내게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고도로 진화한 로봇은 인간과 뭐가 다를까
그러다 문득 인공지능 로봇이 아주 많이 진화하는 상상을 했다. 예전에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을 보고, 원작 만화인 <총몽>을 읽으면서 로봇이 인간처럼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면, 인간과 뭐가 달라질까.. 그런 순간에 우리와 로봇을 구별지어주는 '인간다움', '인간됨‘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의지(will)'를 떠올렸다. 목적과 가치를 설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겠다는, 무언가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는 것. 인공지능이 아주 강력해진대도, 그것은 결국 프로그램화된 일만 효율적으로 잘 해내는 것이지 스스로 무언가를 소중하다고 여기고 선택할 수 있는 최초의 목적 설정과 그것을 달성하려는 의지는 역시 인간의 몫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인간이니까.
로봇이 우리 대신 서빙을 하고, 바둑을 두고, 교육을 하는 그런 세상이 온대도, 그래도 인간이 더 나은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 의지, 용기, 감정, 정체성, 메타 인지 등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1년쯤 지나 하오징팡의 단편 소설 <인간의 피안>을 읽었다. 일단 제목이 멋지지 않은가? 뭔가 있어 보이고^^
내가 책을 좋아하는 데는 재미도 있지만, 지적 허세도 있다. (서가에 꽂아놓고 언젠가는 읽을 거야 하는 책들을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ㅋㅋㅋㅋ)
부지런한 생활인, 작가 하오징팡
책의 제목도 내 눈길을 끌었지만, 작가 소개는 더 더욱 그랬다. 내가 꿈꾸는 삶과 비슷해서이기도 하고, 또 지은이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가 '어? 이 사람, 뭐지?? 궁금해!!!'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고등학생때 전국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수상하며 베이징대학 중문과에 입학할 자격을 얻었는데도 이를 포기하고 칭화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다는 것, 석사는 천체물리학을, 박사는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것, SF 최고 문학상인 휴고상을 수상했는데 본업은 국가정책 연구원이라는 것. 게다가 학생때부터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고 빈곤 지역 아동의 교육을 지원하는 '함께 만드는 교육'이라는 공익사업을 하는 사회운동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것도.
딸 아이가 깨기 전 한두시간이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분주한 생활인으로서의 작가 (아, 이 모든 것을 하면서 이렇게 소설도 쓸 수 있다니! 역시 어나더 레벨... 인가)
서두르지 않으나 멈추지 않고
책을 읽기도 전에 일단, "바빠서 글을 쓸 시간이 없어.."라고 게으름을 피우던 나를 돌아본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동생들을 보며 나는 세상의 모든 부모가 위대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바빠도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엄마에 비길 수는 없을 것이다. 옮긴이가 쓴 작가 소개를 보니 하오징팡이 보장된 대학 입학을 놔두고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물리학을 전공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글을 읽고, 뇌가 작동하는 방식, 인간의 의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을 유일한 글쓰기의 주제로 정했다고 한다. 그녀가 중문학을 전공하지 않고 물리학, 천체 물리학, 경제학을 전공한 것이 글을 쓰는 데 더 도움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나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고 더 다양하고 폭넓게 현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그 모든 화려한 이력보다 내가 하오징팡이라는 인간에게 끌린 것은 바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 같은 하오징팡이 글쓰기에 스스로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 좌절하며 보낸 시간이 꽤 길었다는 사실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장르를 인정받지 못한 채 보낸 긴 세월 동안 대중의 입맛에 맞게 바꿔보고 싶은 유혹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계속했다. 그 밑바닥에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 공감해주는 이가 한두 명 남는다고 해도, 그 한두 명을 위해 계속 쓰겠다.'라는 단단한 자기 중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썼다. 어딘가 있을 단 한명의 독자를 위해. 요즘 읽고 있는 신견식의 <언어의 우주에서 유쾌하게 항해하는 법>에서 '서두르지 않으나 멈추지 않고'라는 구절을 봤는데, 마음에 콕 박혔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서두르지만, 멈추지 않고'라고 바꿔서 새겨야 할 듯 하다^^
그래서 뭐? 인간이 로봇이랑 뭐가 다르다고?
우리의 약점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_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강인한 '의지'보다 '죽음'과 '불안', '분노'와 같은 부정적이고 나약한 면이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과 똑같은 복제 인간을 만들어 진짜 나는 새로운 사업 프리젠테이션 현장에 있고, 복제 인간에게 대신 데이트를 하러 내보냈다가 여자친구가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 <당신은 어디에 있지>. 여기에서 여자친구는 로봇이 안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저건 화를 낼 줄 모른다고! 화를 낼 줄 모른다니까!! " 복제인간 로봇을 개발한 남자친구는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 화를 안내는 것도 문제가 되는 거야?? 나는 이 장면에서 '지니~'를 떠올렸다. 동생집에 가서 가끔 "지니, OOO 켜줘." 라며 인공지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이런 저런 말을 걸어보는데, 아직 초보적인 성능을 지녀서 그렇겠지만 너무 뻔한 말을 하거나, 못 알아듣겠다고 해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이런 기계가 남자친구 대신 나와서 "오늘 참 아름다우십니다." 따위의 말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심지어 자신을 욕하는데도 웃으면서 "괜찮아요. 살다보면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죠."라는 식의 말까지 들으면, 어찌 열이 받지 않겠는가. 우리가 농담처럼 말하는 "영혼없는 대답" 딱 그런 거지.
주인공은 긍정적인 감정만 프로그래밍하면 사람들이 더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곧 우울한 자신을 위로하는 로봇의 기계적인 반응이 왜 문제인지 체감하고, 화가 난 여자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분노, 슬픔, 우울, 고뇌, 두려움... 그런 것이 없는 인간은 얼마나 인간미가 없는지
두번째로 흥미롭게 읽은 단편은 <영생 병원>이다. 말 그대로 다 죽어가는 환자를 데려다가 멀쩡하게 고쳐놓고 영원히 살게 해주는 병원인데, 사실 알고보면 외모와 기억까지 환자의 모든 것을 복제해서 만든 로봇이 환자 노릇을, 진짜 인간인 듯 연기를 하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런 상상을 하다니, 말도 안돼!! 라고 하겠지만,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어머니, 어머니가 다 나았다며 (로봇 어머니를 보고) 행복해하는 아버지, 어린 시절 자신과의 추억까지 모두 이식받아 마치 진짜 어머니처럼 구는 로봇... 그 모든 것에 동의한 진짜 어머니를 상상하면 과연 자신이 그런 순간에 로봇을 내팽개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그런데, 나는 여기, '죽는다는 것'에서 바로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이 결정적으로 구별된다고 생각했다. <영생 병원> 속 진짜 어머니는 병이 들어 죽을 수 있는 존재이고, 가짜 어머니는 평생 쌩쌩하게 미소짓는 얼굴로 그를 맞이할 것이다. 진짜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도 홀로 남을 남편과 슬퍼할 아들을 생각해 로봇에게 자신의 기억을 이식하는 힘겨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인간은 결국,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성별이나 빈부격차나 신분의 차이와 관계 없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인 것이다. 그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한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고뇌하며 선택을 한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거나 인생이 계속 반복된다면? 일생의 사랑이라는 것은 필요 없을 것이니, 이번엔 이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다음 번엔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하면 그뿐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니 '죽음을 무릅쓴 도전'이라거나 자신의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구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소중하다고
이야기하는 많은 것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잃을 각오를 하고,
많은 고뇌와 불안 끝에 한 선택이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어떤 인간의 행위가 영웅적인 것으로, 고귀한 사랑과 희생으로 남는 것이다.
죽지 않는 히어로를 싫어했던 어린 나
내가 어린 시절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를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히어로는 총을 맞아도, 칼에 찔려도 죽지 않는 불사신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는 그런 캐릭터가 이해되지도 않았고, 거부감이 들었다. 그가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구하는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나에게 히어로는 그냥 모든 것이 가능한, 죽지 않는 로봇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오는 히어로 영화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스파이더맨 보고 울면서 좋아한다. 아.. 자신이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것, 고독해지는 걸 알면서.. 그게 너무 무서우면서도 그런 선택을 한 거야.. 이렇게. ㅎㅎ (나는 단순한 사람 ㅋㅋㅋㅋㅋ)
결국 내가 내 맘대로 인간됨의 조건이라고 생각한 것은,
자신의 불완전성과 죽음이라는 운명을 인식하면서 그 안에서 최대한 자기 몫의 삶을 살려고 하는 의지!
나는 감정적으로도 잘 흔들리고
스스로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언제나 더 강해지자!!!! 라고 다짐하지만,
생각보다 잘 안되어서
‘강한 척'이라도 하면서 노력하다보면
잘 되겠지,
이렇게 책을 읽으며 스스로 에너지를 채워본다.
(에잇, 너무 인간적이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