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바치는 헌사

한 선생님에게 바쳐진 알베르 카뮈의 <스웨덴 연설>

by 햇볕 냄새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문학을 좋아하는 저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데요. 그럴 때마다 늘 두 사람을 두고 마음 속에서 줄다리기를 하게 됩니다. 제 마음 속에서 1, 2위를 다투는 그 두 사람은 바로 헤르만 헤세와 알베르 카뮈입니다. 힘든 순간에 헤세의 글이 제게 위로를 주었다면, 카뮈의 글은 위로를 넘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었다고 할까요. 카뮈는 제가 현재의 삶을 더욱 사랑하게끔, 추상적인 이념이나 가치보다 곁에 있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끔 만들어준 작가입니다. <이방인>이라는 책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무덤덤해보였다는 이유로 주인공 뫼르소가 무척 비난을 받죠. 어린 시절 저는 카뮈가 이상한 사람일 거라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감정이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만난 카뮈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죠.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와 그의 선생님에 대한 것입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가르치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카뮈와 선생님의 이야기가 더욱 깊이 와 닿았는데요.



카뮈에게는 <섬>의 작가 장 그르니에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고, 사제지간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우정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알제리 대학에 입학하여 장 그르니에를 만나기 전, 어린 카뮈를 사랑과 헌신으로 이끌어준 루이 제르맹이라는 선생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카뮈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선생님이 카뮈에게 어떤 존재였는가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카뮈가 제르맹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카뮈는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 <스웨덴 연설>을 은퇴한 초등학교 선생님 루이 제르맹에게 헌정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그에게 제르맹은 어떤 선생님이었을까요?


카뮈의 어린 시절은 무척 가난하고 불행했습니다. 아버지는 카뮈가 태어나고 1년 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했고, 어머니는 문맹에 청각장애인이었죠.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머니는 카뮈를 데리고 외가로 들어갔고, 카뮈는 어머니와 외할머니, 형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남의 집 하녀로 일하며 근근히 살림을 꾸려갈 수밖에 없었기에 학업을 지원하기란 쉽지 않았죠. 외할머니는 손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취업을 할 것을 기대했지만 담임 선생님이었던 루이 제르맹은 카뮈의 뛰어난 능력을 알아보고 그의 집을 찾아가 할머니를 설득하였습니다. 공부를 더 시킬 돈이 없다는 할머니에게 선생님은 본인이 다 냈으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킨 뒤, 정규 수업이 끝나고 매일 2시간씩 카뮈를 붙잡고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결과 카뮈는 중학교 장학생 시험에 합격하여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루이 제르맹 선생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우리는 <이방인>이나 <페스트>, <시지프의 신화> 같은 작품들을 만나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카뮈 개인적으로도 가난, 그리고 질병과 싸우는 빈민가의 일원으로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카뮈가 장 그르니에 같은 훌륭한 철학자이자 작가를 만나 작품 세계를 넓힐 수 있었던 것도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애정과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어린 카뮈는 중학교 장학생 시험 합격 통지를 받고, 합격에 대한 기쁨보다 선생님을 떠나 낯선 세계로 던져진다는 것에 가슴 아파했을 정도로 제르맹 선생님을 믿고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35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에도 그가 내밀었던 손길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보냈던 것이겠죠? 카뮈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뒤 루이 제르맹에게 보낸 편지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 친애하는 제르맹 선생님,

요 얼마동안 저를 에워싸고 시끄러웠던 소음이 좀 가라앉기를 기다려 이제야 선생님께 진심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막 저 자신이 얻고자 청한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과분한 영예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제가 어머니 다음으로 생각한 사람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선생님이 그 당시 가난한 학생이었던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리고 손수 보여주신 모범이 없었더라면 그런 모든 것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영예를 지나치게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선생님이 어떤 존재였으며 지금도 어떤 존재인지를 말씀드리고, 선생님의 노력, 일, 그리고 거기에 바치시는 너그러운 마음이 나이를 먹어도 결코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학생이기를 그치지 않았던 한 어린 학동의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 있음을 선생님께 말씀드릴 기회는 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키스를 보내며

- 알베르 카뮈 ”


* 이 글은 카뮈의 <최초의 인간(1995, 김화영 옮김, 열린 책들)>에 실린 편지와 김화영 교수님의 칼럼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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