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리어를 쌓은 내내, ‘커리어가 망했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한 회사를 뚝심 있게 오래 다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높은 자리에 오른 것도, 대단한 전문성을 쌓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2. 무엇보다도, 회사를 옮길 때마다 나름의 가설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다 틀렸다.
3. 처음 스타트업으로 넘어올 때, 당시 미디어 업계에서는 ‘디지털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니 하는 말들이 유행했는데, 심지어는 ‘디지털 온리’, ‘모바일 온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4. 당시에 뉴스나 책 등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혹 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커리어는 레거시보다 디지털이나 모바일에서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5.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세상은 엄청나게 확대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 만들어졌던 뉴미디어 회사들이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된 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미디어 스타트업들 중 상당수는 문을 닫았고, 나름 이 업계에서 맹주 역할을 했던 버즈피드나 바이스 미디어 또한 몰락 위기에 있다.
6. 물론 여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디지털이나 모바일 그 자체가 이 업의 본질은 아니었던 셈. 그냥 유통 과정의 변화 혹은 고객과의 관계를 맺는 과정의 진화일 뿐.
7. ‘디지털’이나 ‘모바일’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쯤, 결국 이것도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BM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8. 그 즈음에는 ‘유료 구독 모델’이라는 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구독 경제가 세상을 집어삼킬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주장들은 꽤 그럴듯했다. 그렇게 유료 구독 모델을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9. 실제로 경험해보면서 알게 됐다. 유료 구독 모델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구독 경제가 세상을 바꿀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실제로 구독 모델을 가지고 유의미한 변화를 만든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고.
10. 대부분의 유료 구독 모델 회사는 망했고, 미디어 업계에서도 유료 구독 모델로 유의미한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회사는 넷플릭스와 뉴욕타임즈 정도. 근데 이들은 초짜가 아니라, 수십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회사들.
11. 자본과 인력이 척박한 상황에서 유료 구독만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어느 시점에서 정체기를 맞이하는데, 이를 돌파하지 못하면 망하거나 지지부진하거나 둘 중 하나다.
12. 그런데 이를 돌파한 회사 자체가 많지 않아서,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명확하게 알지 못한달까?
13. 그렇게 단순 유료 구독만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걸 깨달을 때쯤, 구독과 커뮤니티를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팬데믹을 만나면서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14. 그렇게 커리어 순간순간마다 가졌던 가설들이 모조리 다 틀렸는데.. 사실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배운 게 더 많으니까.
15.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단기적으로는 틀린 게 맞지만, 장기적으로 틀린 건 아니다. ‘디지털 중심’, ‘유료 콘텐츠 비즈니스’, ‘멤버십 기반의 콘텐츠 비즈니스’라는 건 언젠가는 굴러갈 아이디어들이니까.
16. 이것들이 왜 안 굴러갔는지, 잘 굴러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훨씬 더 중요하겠지. 그리고 10년 넘게 여러 경험을 해오면서 나름의 깨달은 것들도 있고, 커리어적으로 그렇게 성공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독립적인 사업체도 운영하고 있지 않나. 물론 초라한 상황이지만.
17. 그리고 웃긴 이야기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하는데.. 사람들은 이 수동 멤버십을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그래서 이를 시도할 사람도 거의 없겠지만, 설령 누군가 시도한다고 해도 혼자서 수동으로 유료 멤버십을 2년 넘게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18. 이 말도 안 되는 방식에는 내가 그동안 배운 것들이 다 접목되어 있으니까.
19. 이처럼 망했다고 생각한 커리어들이 나름 사업의 토대가 된 셈인데, 커리어 관련해서 코칭이나 컨설팅은 많지만, 이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애정하는 두 분과 커리어 아무말 모임을 준비하고 있는 건 안 비밀. 무튼 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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