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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on Jun 29. 2019

엔드 게임, 토이 스토리, 그리고 작별

이별은 서로가 더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1. 우습게도, '토이 스토리4'를 보는 동안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던 건 '어벤저스 : 엔드게임'이었습니다. 


(본 글에는 '토이스토리4'와 '어벤저스 : 엔드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유치하지만, 인피니티 워를 보고 나서인지, 토이 스토리의 상징과도 같은 대사, To infinity and Beyond(무한한 세상, 그 너머로)가 외쳐지는 순간, 



엔드게임이 떠올랐고, 우디가 제시에게 보안관 뱃지를 건네줄 때는 그 모습 위로 캡틴과 팔콘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거든요.


3.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두 영화는 장르도, 주제도, 그리고 스타일도 완전히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작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요.


4. '엔드 게임'은 타노스와의 결투를 다룬 영화이지만, 동시에 10여 년 동안 함께 해온 슈퍼 히어로들과의 작별을 다룬 영화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헤어짐의 이유를 '계약 만료'라는 현실적인 부분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세상을 위협하는 강력한 빌런들에 맞서 싸우는 슈퍼 히어로들에게 작별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숙명과도 같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영웅이라고 해서 늘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죠.



5. 그래서 현실적인 슈퍼 히어로를 다루는 영화라면, 그리고 마블이라면, 언젠가는 영웅과 헤어지는 서사를 한 번은 다루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엔드 게임에서 마블이 보여준 작별의 방식은 빈틈없이 완벽했습니다. 작별을 고한 모든 히어로들이 다 스스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결말을 선택했거든요.



6. 물론 사람들 중에는 블랙 위도우의 결말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 분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런 비판이 이해가 가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되살리기 위해 자기자신을 내던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때서야 그녀에게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톨이에 냉혹한 스파이 같았던 그녀에게도 자신을 내던지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죠.



7. 나타샤 뿐 아니라, 엔드 게임에서 팬들과 작별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모두 주체적으로 자신의 결말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마블이 얼마나 자신들의 만든 캐릭터를 아끼는지, 그리고 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을 얼마나 리스펙하는 지도 알 수 있었죠.



8. 장르와 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토이 스토리4'를 보면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은 가장 사랑받는 장난감이 아닌 우디는, 그리고 나이가 들면 결국 아이들은 장난감을 떠난다는 사실을 이미 알아버린 우디는,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주체적인 선택은, 자칫 슬플 수 있는 이별의 순간을 너무나도 찬란하게 만들죠.


9. '토이 스토리3'의 결말이 너무 완벽했기에, 픽사가 굳이 왜 4편을 만드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어쩌면 픽사의 제작진들은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디에게는 더 나은 결말이 필요하다'고요. 정말 '토이 스토리다운 결말'은, 우디가 단순히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것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우디 스스로가 '무한한 세상, 그 너머'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일지도 모른다고요.



10. 그렇게 픽사가 새롭게 그린 우디의 결말은 너무나 완벽했고, 어쩌면 픽사의 창작자들은 본인들의 창작의 출발점이었던, '우디'라는 캐릭터에게 보다 완벽한 결말을 선물하고 싶어서, 다시 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 또한, 본인들이 만든 창작물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죠.


11. 그렇게 스스로가 만든 창작물에 책임감을 느끼고, 또 소중히 다루는 모습들이 보면서 부러우면서도 또 존경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면, 정작 '토이 스토리4'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창작과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12. 누군가의 노래처럼,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크고 작은 이별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마주하면, 상실감이나 아쉬움부터 느끼게 되죠.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작별의 순간들이 어쩌면 조금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3. 그동안 해온 일을 해온 방식대로 계속 하고, 만나던 사람을 만나고, 늘 가던 길로 가는 것은 언제나 안전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굳이 그 길을 벗어날 필요가 없을 때도 많죠. 그런데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고, 또 미지의 영역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려면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동안 살면서 만났던, 여러 헤어짐의 순간들이, 어쩌면 누군가가 내린 주체적 선택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4. 그동안 쌓아온 관계나 과거의 찬란했던 순간들에서 머무르지 않고,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무한한 세상 그 너머로 발걸음을 내딛었던 것이죠. 마치 우디처럼.


15. 그래서 철없는 생각이겠지만, 무언가와, 또는 누군가와 이별한다는 건, 서로가 다시 독립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순간적인 감정의 동요 때문에, 그 순간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 했을 뿐, 그 순간이 누군가에는 꽤나 용감했고, 그래서 찬란했던 순간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16. 이런 생각을 하니,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그 가수는, 어쩌면 그렇게 하루하루 무한한 세상, 그 너머로 발걸음을 내딛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To Infinty and Beyond. 그리고 그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멀어지는 많은 것들을 잘 감당하는 것이 30대가 되면 짊어져야 할 그 무언가인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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