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불란서 금고>를 보고 와서
연극, 이라는 장르에 대한 나의 기억은 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극열전3의 <에쿠우스>.
그 시절에 친한 친구가 한창 연극에 빠져있다길래, 그래? 하면서 그럼 나도! 하면서 찾은 작품이 <에쿠우스> 였다.
제일 보고 싶었던 페어로 공연을 한번 보고 나니 다른 배우는 어떻게 할까 궁금해서 좋아하는 배우는 고정, 상대역을 다른 배우로 바꿔서 보고, 그러고 나니 그럼 다른 메인 배우는 어떻게 할까 궁금해서 또 바꿔서 보고..
다행히 공연기간이 짧지 않았고 인물이 많지 않아서, 아르바이트해서 월급 받으면 공연예매하고 또 아르바이트해서 월급 받으면 공연예매하면서 모든 경우의 수의 페어를 다 보고 제일 좋아하는 페어로 한번 더 보고. 연극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던 시간,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호사스러웠다.
무대연기와 매체연기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연기할 때 어떤 지점이 중요한지 그 포인트가 다른 거라 무대 연기를 뛰어나게 하더라도 매체에 와서 어색할 수 있고, 매체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무대 가면 대사 전달조차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전에는 그냥 스토리나 극이 좋아서 봤다면, 업계에 오고 나서는 연기나 무대 연출을 보러 가는 경우가 많아 보통은 좋아하는 배우의 무대 연기가 궁금할 때 찾아서 보러 가는 편이다.
누구나 꼭 한번 같이 작품 해보고 싶다고 하는 선배님이셨고, 이 시대의 어른이셨고, 모두의 선생님이셨던 이순재 선생님이 떠나신 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을 같이 하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지만 그의 무대를 보러 가는 건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게을렀다, 싶었다. 우리에게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찾아 나서야겠다, 고 마음먹었다.
내가 예매한 <불란서 금고>는 워낙 매체로도 잘 알려진 배우들의 향연이라, 캐스트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머릿속으로 이상형 월드컵을 몇 번 거친 뒤에 내가 예매한 페어는 신구/장현성/장영남/최영준/김슬기/안두호.
신구 선생님 공연이 보고 싶었던 것이 1번, 장영남 선배님 무대연기가 보고 싶었던 것이 2번이었다.
심지어, 개인적인 극호 배우인 최영준 배우님까지. (매체에서는 <빈센조>로 처음 얼굴을 익혔던 것 같고, 연극 <ART>도 너무너무 좋았다. 최근 <자백의 대가 (2025)>에서도 정말 미쳤다. <p>)
공연은 예상했던 대로, 너무 좋았다.
연기 잘하는 사람들 다 모아놨는데 너무 재밌고 좋을 수밖에. 애드리브인지 대사인지 모를 배우들의 미친 티키타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극을 마치고 당신에게 주어지는 짧고 굵은 메시지까지. 아, 이거 장진 연출이었지, 하고 생각했다.
(코미디가 진짜 어려운 건 웃음 코드가 달라서이다. 나는 장진 코미디를 좋아한다.)
극의 시작을 신구 선생님이 여시는데, 아흔이 되신 선생님의 발성과 딕션의 정확함이 너무 놀랍다.
(최근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배우가 연극을 시작했다고 해서 보러 갔다가 대사가 하나도 안 들려서 전반부에 꽤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발성과 딕션은 기술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소품도 별로 없어 정말 다섯 사람의 연기로 채워야 하는 극이었다. 인터미션도 없다.
그 시간 동안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친구는 선생님이 무대에 서 계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동이라고 했다. 무대에서 후배들과 호흡하며 연기하시는 모든 순간이 감탄스러웠다고.
그리고 내가 좋았던 건,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는 관객들이었다.
연극을 보러 가면 가득가득 찬 좌석들을 볼 때 기분이 좋다. 이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이 공연을 보러 왔구나, 하는 소속감도 느껴진다.
다만, 연극/뮤지컬 쪽도 팬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은 분야이다 보니 관람에 있어 누군가에게 방해되면 안 된다는 부담감에 웃음소리 내는 게 어려운 분위기도 많다.
<불란서 금고>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다 같이 큭큭 거리며 깔깔대며 웃을 수 있어서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장항준 감독님의 <왕과 사는 남자 (2026)>가 천만이 넘기를 간절히 바랐던 건, 영화관에서 느꼈던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그 순간의 경험이 너무 감격스럽기 때문이다.
영화관이 텅텅 비면 물론 전세 낸 것 같고 좋을 때도 있지만, 북적북적 거리는 그 분위기 속에 깔깔거리며 웃는 그 순간은 정말 너무 행복하다.
누군가에겐 어떤 영화의 흥행이 너무 거북할 수도 있겠다. (그런 댓글들을 많이 봤다.) 무슨 영화 하나 가지고 이렇게 난리냐, 할 수도 있겠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냥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내 영화가 아니더라도 (그렇다면 더 좋겠지만) 천만 영화의 탄생은 꽤 의미가 있다. (지금은 1200만이 넘었다!)
영화계에 새로운 봄이 오는 것인가 하는 기대감을 준다. 또, 돈이 되는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돈이 안 되는 작은 영화도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극을 소비하고, 영화를 소비하는 것이 너무 기쁘다.
함께 웃는 기쁨이 가득한 2026년이 되기를, 신나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