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여름, 결국 해낼 완주.

<첫 여름,완주>를 읽고

by 솜귤

가끔, 나를 도전시키는 작품을 만나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약간 눈물이 고일 것 같기도 한데 또 마음은 굉장히 기쁜, 울 것 같지만 기분 좋은 탄성이 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좋은 영화를 봤을 때,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음악을 들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그런 때 말이다.


최근에는 그런 마음이 잘 들지 않아 고민이었다.

자타공인 감성 100% 대문자 FFF 인간이던 내가 어느 날 “너 T야?” 소리를 하루에 세 번은 듣는 요즘, “사회생활 7년이면 다 그렇지, 뭐”라고 대꾸는 하지만 가끔은 슬퍼졌다. 누구보다 감정선에 충실하게 스토리를 읽고, 요즘은 조금은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갬성글’로 블로그의 명맥을 유지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뭘 보고도, 뭘 읽고도, “음.. 좋았어.”가 최선이라니.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출판사 무제의 첫 듣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정보가 흥미가 생기면 일단 보고, 읽고, 긍정적인 마음이 들면 그제야 나무위키를 시작으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며 점점 빠져드는 덕후형 성격(이런 얕은 수준의 집착도 덕질로 쳐주는지는 모르겠지만)인데, 무지하게도 책을 사면 오디오북의 링크가 있다거나 해서 들으면서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첫 여름,완주>가 ’오디오북’이 아니라 ‘듣는 소설’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나왔다는 건, 이 책은 오디오북이 아니라는 것인데 말이다.


* 전 오디오드라마 연출로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을 분들을 위한 정보전달 목적의 단락임을 명시합니다. *

오디오북은 ‘책‘을 그대로 읽는 형태다. 이전 회사에서 ‘오디오 드라마‘라는 새로운 단어를 써서 작품을 만들었던 것도 오디오만으로 하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디오드라마의 원고는 ’소설‘형태가 아니라 ’대본’ 형태이다.

‘듣는 소설‘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첫 번째 목적이 ‘듣는‘것이고 그 형태가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 소설이지만 대본의 형태로 대사들이 적혀있어 특이하다.

** 비장애인 독자들은 ‘윌라‘를 통해, 장애인 독자들은 ’국립 장애인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해당 소설을 들을 수 있다. **


사둔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이 책을 오늘은 반드시 읽으리라. 집에서는 몸 편안하고 손가락이 쉽고 눈이 즐거운 넷플릭스가 항상 나와 함께 하기에, 오늘만은 꼭 해내리라 마음먹고 양재천의 카페에 나왔다. 그리고 해냈다! 드디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도전을 받았다.


<첫 여름,완주>는 어쩐지 미스테리한 구석들을 가득 숨겨놓은, 힐링물이다.

열매가 마주한 여느 한 여름의 시간들을 함께 완주하면서, 나는 마치 그녀의 삶이 마치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함께 처량해졌다가 막막해졌다가 따뜻해졌다가 위로받았다가, 또다시 쓸쓸해졌다가.. 하지만 결국 단단해지며 책장을 덮었다. 그리하여 이 글을 쓸 힘이 났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리셋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이 말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어릴 때부터 스스로 “나는 또 리셋병에 걸렸어.”하고 한시적으로 괴로운 시간들을 간헐적으로 겪고 있다.)

증후군이라니 엄청 거창해 보이지만 그냥 다 그만두고 게임처럼 리셋해서 처음부터 살고 싶어 하는 스스로의 염원 같은 것이다. 주로 어느 날 다이소 거울에 비친 내가 너무 못생겼을 때, 일상 속에서 신체의 노화를 알아차렸을 때, 지난 연애가 실패였음을 깨달았을 때, 결론적으로 바꿀 수 없는 과거들로 만들어진 지금의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일 때 그런 마음이 든다. 현실적으로 인생을 리셋할 수 없으니, 실패할 것 같거나 잘 못하는 것 같으면 빨리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나는 포기가 빠른 어른이 되어버렸다.


2019년 귀국해 일을 시작하면서 엄청난 문화충격들을 온몸으로 겪으며 지그재그로 되어있는 롤러코스터 레일 모양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것만 같던 시간을 보냈다. 매일 밤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누르며 잠이 들었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제발 오늘은 무사하기를 하며 견뎠다. 꿈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선배들의 말에 ‘제 목표는 완주입니다.’라는 말로 버텼다. 내가 겪어낸 여름은 치열했고, 가을에는 시들어버렸으며, 겨울이 된 어느 날 깨달았다. 작품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나‘를 포기했음을.


열매가 처음으로 완주에서 맞이하는 이 여름에 아무 일도 없기를, 제발 이 여름만은 홍수가, 태풍이 열매가 있는 완주 마을을 조용히 지나가기를..

수미 엄마도, 양미도, 애라도, 이장님도, 그리고 열매의 동경도.. 모두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각자의 여름을 어떤 모양으로든지 간에, 어떤 주제로든지 간에, 마주하고 겪어내고 결국은 완주해 낼 마을 사람 모두를 응원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게 된 시작점이 되는 그 여름도. 조금은 애틋해졌다.


이제 또 새로운 봄이 오고 있다.

갑자기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는 여름이 기다려진다. 올해는 어떤 여름을 살아내려나. 어떤 여름을 완주하려나, 궁금해진다.


<첫 여름, 완주>를 통해 당신도 이 여름을 기다릴 수 있게 되기를.

무사히, 가능하다면 조금은 기쁘게, 자주 웃으며 그 여름을 완주해 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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